한국일보

말 잘듣는 우리 아이, 그런데 왜?

2008-05-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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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진(뉴욕가정상담소 호돌이 프로그램 디렉터)

“우리 아이는 착하고 얌전해요. 근데 ××만 가면, 혹은 아무개하고만 있으면 자꾸 싸움이 나네요. ×× 애들이 이상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는 애들 보내면 안돼요. 아무래도 아무개가 산만하고 버릇이 없어서 영향을 받나봐요. 속상하네요. 어제는 어디서 배웠는지 욕도 하더라구요”
부모 상담을 하다보면 흔히 듣게되는 얘기 중에 하나가 위와 같은 내용이다. 당신의 착하고 얌전한 아이들이 이상(?)하게 변해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정말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말들을 프로그램 담당자로써 두번, 세번 듣다보니 어떤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주로 이 얌전하고 착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은 집에서만 그런 경우가 많다. 부모님들은 특정 장소, 특정 인물을 지적하며 그곳에 있을 때, 그 아이와 있을 때, 특별히 자신의 자녀가 규율을 못 지
키거나 선생님 말을 안 듣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얌전하고 착한 아이들은 특정 장소와 특정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 안 보이면 그렇게 행동이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A라는 학생의 부모는 A가 B라는 아이와 유난히 충돌이 많다며 B와 부딪치지 않도록 필자가 담당하는 프로그램, 호돌이 방과후 학교에 부탁을 한 일이 있었다. 필자는 기꺼이 그렇게 했지만 A의 행동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A를 좀 더 주의깊게 관찰한 결과, A는 그의 부모님들의 믿음과는 다르게, 어느 누구와도 잘 융합하지 못하는 아이라는 게 드러났다. A는 항상 아이들을 귀찮게 했고, 때리고 도망가고, 욕하기를 예사로 하는 아이였다.
담당하는 카운셀러가 몇 달 동안이나 계속 주의를 주고, 본인의 행동이 어떻게 비춰지는가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설명해 주어도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학교선생님도 A가 같은 행동을 학에서 한다며 걱정을 하곤 했다.
그동안에도 A는 끊임없이 반 친구들과 말로든 몸으로든 싸움을 했고, 부모님에겐 상대 아이가 먼저 자신을 괴롭혔다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A의 부모님은 왜 당신의 아이가 필자의 프로그램에서만 유독 문제를 일으키는지 모르겠다며 불평을 하곤 했다.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부모님께 실상은 A의 말과 다르다는 것을 설명했지만 이미 굳어져버린 A 부모님의 ‘믿음 - A는 문제가 없는데 프로그램에 있는 아이들과 프로그램 자체가 문제 -은 확고했고, 결국 얼마 안가 A는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다른 방과후 학교로 옮겨갔다.

호돌이 방과후 학교를 운영하면서 이런 오해 아닌 오해를 받은 일이 많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뉴욕가정상담소에서 운영되고 있는 무료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학업 정진 외에 정서발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주로 한인들에게 제공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뉴욕가정상담소가 한인사회 발달에 목적을 두고 있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좋고 선한 의도를 가지고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간간이 들리는 이러한 비난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문제의 원인을 안에서 찾기보다는 밖에서만 찾으려는 안일함을 보게 된다.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다는 비난도 아니고, 모든 문제가 그렇게 믿는 부모에게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때로는 내 아이와 아이가 속한 상활을 좀 더 객관적로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모로서 받아들이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이 힘들고 마음 아픈 일이라고 해서 계속 부정만 한다면 결국 그 안에서 가장 고생하는 것은 아이라는 것을 부모님들은 알아야만 한다.

아이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계속 환경 탓을 하며 환경만 바꿔주면 그 아이는 문제를 맞닥뜨려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수가 없다. 이것이 진정 아이를 아끼는 부모가 할 일일까?
물론 어떤 경우에는 확실히 그 환경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A의 경우처럼 어떤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과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건 부모로서 아이가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격려하고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지 그 환경을 탓하고 주변 아이들을 비난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필자는 부모님들에게 내 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특별히 부정적인 일일 경우 그 문제의 원인을 우선은 안에서부터 자문해 보는 습관을 들이도록 권유하고 싶다. 환경적인 이유와 외부의 원인을 찾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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