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른의 아버지

2008-05-0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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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수필가/목사)

춘래불사청춘(春來不似靑春)’이라는 말처럼 봄인지 겨울인지 아리송한 가운데 5월을 맞이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뭇사람들이 5월을 예찬함에 말과 글을 아끼지 않는다. 하여 5월을 가리켜 ‘계절의 여왕’이라 일컫는다.

4계절 중 푸르름이 시작되는 신록의 5월, 침묵 속에서 피어난 꽃들이 지고나면 눈부시게 밝은 녹색의 빛깔들이 분수처럼, 합창처럼 생명이 약동하는 원색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5월은 가정의 달이요, 청소년의 달이요, ‘어린이날’로부터 시작됨에 더욱 희망의 달이라 칭할 것이다.
고국산천을 떠나 머나먼 미국땅에 건너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 잘 키우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추켜세운다. 그래서 툭하면 어린 아이들에게 “너희들 위해서 아빠 엄마는 밤낮없이 피땀흘려 고생하는데...”라는 말을 아이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쳐댄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돈 벌어 아이들 교육비만 충당해 주면 부모의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란 말인가?


도대체 문제아들이 왜 생기는 것일까? 언제나 문제아 뒤에는 문제 부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교육가들은 목소리를 높이는데 인격도야를 위한 자녀교육을 전적으로 학교에만 맡기면 되는 것일까?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의 인격체인 것이다.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때문에 어른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해서는 아니될 일이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아이들을 대할 때 아버지를 대하듯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대해야만 아이들이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The Rainbow’라는 시 가운데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이라는 한 구절이 있음을 모두 다 알고 있다. 정상적인 관점에서의 ‘아버지 상’을 생각해 보자. 웃어른으로서 존경의 대상자요, 그를 소중히 여기고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그의 생활을 본받아야 하는 분이시다. 그런 뜻에서 시인은 ‘아이들은 어른의 아버지’라고 표현했다고 본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언행이 과연 아버지에 대한 것처럼 행해지고 있는지 일년 중 어린이날 하루만이라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날, 월남 이상재 선생께서 길을 가시다가 어린이들이 놀고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주고 받으며 잠시 함께 노시니 선생을 모시고 가던 측근들이 “선생님, 체면없게 뭘 어린애들과 노십니까?”라고 말함에 선생께서는 “이보게, 아이들 보고 어른이 되랄 수는 없지 않나? 내가 어린이가 되어야지”라고 대답하셨다고 한다.오늘날 우리 시대의 어린이들을 보라. 부모 잘못 만난 탓에 어릴 적부터 하루 세끼 제대로 먹
지 못해 배를 곯아야 하는 것만도 서러운데 어른들의 마수에 붙잡혀 앵벌이를 비롯해 온갖 형태의 구걸행각을 일삼아야 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인면수심같은 어른들의 성욕의 대상으로 희생돼야 하니 너무나 참담하고 기가 막혀 무슨 말을 해야 할런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런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이 무슨 소용이냐 말이다.

자고로 교육이란 말이 아니라 실제 생활로서 해야 하는 것이니 모든 어른들이여, 다소곳이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어린이들 앞에 참회를 하고 어른들 스스로가 각자의 생활양식부터 국가 사회적 제도 실현까지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가리켜 ‘새싹’이라고 하는데 일단 돋아난 싹은 좋게건 나쁘게건 자라게 마련이다. 이 많은 아이들이 10년 후, 20년 후에는 어른이 되어 이 사회의 주인공들로서 행세할 터인데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느냐에 따라서 이 사회의 행, 불행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훗날, 만일 그들의 입에서 그들의 선배와 어른들을 원망하는 소리가 나오게 된다면 어느 누구도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그 첫날인 ‘어린이날’부터 의미있게 되새겨야 함은 ‘첫 단추가 잘 채워져야 나머지 단추들이 제대로 채워진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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