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돈과 행복

2008-04-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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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요즈음은 신문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기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노력해도 뱁새가 황새를 따라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어렵기 때문일까? 지출을 줄이고 또 줄여도 저축은 커녕, 점점 더 부족해지는 것이 요즘 생활이다.

얼마 전 경제면에 실린 기사를 보니 한편에는 도산한 기업의 직원들이 새 일자리를 찾아 곳곳을 헤맨다는 내용이 있는 가하면, 또 한쪽에는 미전역에 걸쳐 겨우 먹고 사는 소매업체 수천개소가 문을 닫고 있다는 내용이 눈에 띤다. 이 기사들과 함께 이날 특히 눈에 들어온 기사는 전 세계에 백만장자가 800만 명인데, 이 가운데 310만 명이 미국거주자이고 그 중에서 460명이 억만장자라고 한다. 그 것도 사는 집을 제외한 순수 재산이 그렇다는 것이다.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이렇게 부자가 많다니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이다. 태어날 땐 누구나 똑같이 빈손으로 세상에 나왔는데, 누구는 이렇게 부자가 되고, 누구는 그렇게 먹고 살기가 어렵도록 빈곤한지 모를 일이다. 작금의 경제구조는 있는 자는 점점 더 있게 마련이고, 없는 자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다. 있는 자는 위기에 오히려 가진 부를 가지고 적시에 투자, 일확천금을 버는 기회가 있는 가하면, 없는 자는 갈수록 치솟는 렌트 비 및 집 값, 물가상승 등의 요인으로 현상 유지는 커녕,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가 금융권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이라 너도 나도 죽겠다 난리아우성인데도 어떤 펀
드매니저는 이런 기회를 틈타 37억 달러에 달하는 사상최대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그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의 시대를 절감케 하고 갈수록 없는 자는 있는 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부자와의 사이에 괴리감을 점점 더 느끼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자가 되는 데에는 거기까지 가기위한 남다른 노력이나 남과 같지 않은 차별된 전략 등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본
다. 그래서 그들이 그런 부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것은 부유한 자와 없는 자에 관한 소식이 동시에 실린 이날 지면에 ‘돈과 행복’ 정비례하나? 라는 제목으로 소득과 이에 따른 만족도, 그리고 느끼는 행복감에 대한 기사도 보였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짧은 출퇴근시간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들인데 이는 돈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사람들을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하며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풍족함은 그래서 좋은 것이라는 결론이다.

실제로 돈이 있어야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갖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가질 수 있다. 이것은 현대생활에서 어쩌면 할 수만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하고 여유 있는 생활이 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마음이 한결 즐거워지고 그러다 보면 생활이 자연 윤택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돈이 왜 싫은가? 부자가 되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져보게 되는 희망이요, 꿈이다. 이왕이면 부자로 살다 가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해보고 남도 도와주고 사회에 기부도 하고 살면 얼마나 사는 것이 보람되고 즐겁겠는가.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꼭 행복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돈이 많지 않다고 돈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할 일은 아니다. 부자들을 보면 대부분 항시 무언가 쫓기는 듯 바쁘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부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마음이 바쁘고 분주한지.. 늘 긴장감 때문에 어떤 부자는 돈도 다 귀찮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두 다리를 편안하게 뻗고 자본 일이 없다고 한다. 돈이 좋긴 하지만 그 돈 때문에 따르는 긴장감과 압박감이다.

이민초기 가발장사를 하던 한 한인은 그 당시 얼마나 장사가 잘 됐는지 하루 나가기만 하면 돈이 자루로 들어왔는데 너무 피곤해서 돈도, 가족도 다 귀찮아 방 한 쪽에 자루를 내동댕이치고 잤다고 한다. 돈이 아무리 쏟아져 들어온들 이것이 무슨 행복인가. 글쎄, 어떤 한인은 돈이 들
어오는 재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어찌됐건 지금과 같은 경제 제일주의의 시대에서는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다만 돈이 무엇인가를 알고 어떻게 써야 좋은 것인가를 아는 사람에게만 부(富)의 행복이 찾아온다. 써야 할 곳에 제대로 돈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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