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번째 자리

2008-04-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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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석(뉴욕그리스도의교회 목사)

예전에는 각종 경기에서도 금메달에만 열광했다. 그래서 아주 열심히 노력하여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딴 선수가 기쁨의 눈물이 아닌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심지어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카피로 광고했던 기업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위대한 2인자들을 찾고 있다.요즘 TV 드라마를 보면 주연 배우보다도 조연배우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연은 단명하여도 조연은 그들 말처럼 영원하다. 그래서 그 자리를 잘 지키는 사람은 결코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맹목적으로 일인자만을 추구해 온 문화를 뒤엎고 협력자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아론, 갈렙, 요나단, 세례요한, 바나바 등 수많은 자들이 나타나 두번째 자리에서 최고 리더를 보좌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따르는 구성원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고 공동체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어떤 기자가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에게 “오케스트라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악기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번스타인은 “제 2바이얼린입니다. 제 1바이얼린을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1바이얼린을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 열의를 가지고 제 2바이얼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제 2연주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음악이란 영원히 불가능해질 것입니다”라고 답변을 했다고 한다.


힘이 집중되는 곳에는 1인자, 최고 결정권자가 있게 마련이다. 1인자는 그러나 막강한 힘과 권위에 비해 어려움도 많다. 앙드르제 자니위스키의 소설 ‘쥐’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지도자 쥐를 해부했더니 머릿속이 다 녹아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최고결정자는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말이다. 괴롭고 흔들리기 쉬운 자리다.수많은 이들이 1인자 자리를 노린다. 불안감이 친구처럼 함께 한다. 항상 뛰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생명을 단축시킨다.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고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우려감은 이를 부
채질한다. 주변에 뛰어난 인재들을 멀리하고 고립되면서 스스로 무너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오히려 2인자가 여러모로 장점을 지닐 수 있다. 2인자는 책사(策士), 실권자, 후계자, 라이벌의 개념이 모두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2인자는 이 4가지 역할이 혼합되어 있으므로 미묘하고 어려운 자리이다. 2인자가 1인자의 눈에 너무 크게 보이면 라이벌로 여겨져 죽음을 당하고 반대로 너무 작게 보이면 1회용품처럼 한 번 쓰고 버려버린다.주은래는 모택동을 보좌하며 ‘영원한 2인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인기투표에선 늘 주은래가 1위다. 지도자가 되진 못했지만 최고의 지도자를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했으며 언제나 조직의 단합만을 추구했다.

2인자 자리를 지키며 신중함과 유연함으로 대처했다. 젊은 시절 그는 최고 지도자의 일원으로 사실상 모택동보다 서열이 한참 위였다. 하지만 모택동의 전략을 적극 지원하며 27년간 총리로서 보좌한 것이다. 이처럼 2인자는 1인자를 적극적으로 보좌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정받지 못해도
꾸준히 성과를 쌓아가야 한다.

두번째 자리와 리더십은 2등급의 자리와 리더십이 아니라 배려의 리더십이자 중심의 리더십이다. 진정한 두번째 자리의 사람은 모든 이들을 1인자로 대우하는 사람이다. 인정과 배려를 받은 상대방들은 1인자 같은 재능을 보인다. 혼자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열심을 내도록 격려한다.

우리의 사회에서는 1인자 위치에만 올라가려 한다. 두번째 자리를 도외시하거나 그 역할을 매우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
서울 삼청동에 단팥죽으로 유명한 집의 이름이 ‘서울서 두번째로 맛있는 집’이라는 간판을 단 곳이 있다 한다. 그렇다면 첫번째 맛있는 집은 어디인가? 물어보면 ‘그야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이지~’라는 답을 듣게 된다고 한다.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에 겸손하게 1위 자리를 양보한 그 집, 언제인가 가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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