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태극기와 성조기

2008-04-29 (화)
크게 작게
정영휘(언론인)

미국을 이따금 방문할 때마다 특별히 느끼는 소감이 있다. 미국인들은 성조기를 너무 사랑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태극기를 어느 특별한 시기에, 특정한 지역에서 의례적으로 내세우는데 비해, 미국 사람들은 일상의 삶 속에 가까이 두고 있다.

내가 머물던 뉴욕 브루클린 게리슨비치 마을, 이곳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이 집 저 집에 성조기가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무슨 국경일 쯤 되는 걸로 생각하고 물어봤더니 그게 아니라고 한다. 평일에도 그들의 국기는 자랑스러운 아메리카의 상징으로 24시간 바깥 바람을 쐬며 나부끼고 있다.규모가 좀 크다 싶은 주택의 마당에는 우리네 공공기관에서나 봄직한 커다란 국기 게양대가 세워져 있는 곳도 있다. 아마 설치비도 꽤 들었을 것이다.


국기를 사랑함은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다. 성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미합중국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아는 사람들이다.
2001년 9월 11일, 5만명의 상주 인구를 수용하고 있는 110층짜리 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렸을 때,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그 견디기 어렵던 날, 저마다의 손에는 예외없이 성조기가 들려 있었다.이는 뉴욕 브루클린이나 맨하탄에 국한된 예가 아니다. 일리노이주의 링컨시티 시골집에도,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는 길가의 한적한 집 뜰에도 성조기는 한결같이 나부끼고 있다.

모국을 멀리 하고 부모형제를 떠난 이민자들, 피와 땀으로 개척한 자랑스러운 나라, 3억의 미국인은 비록 인종이 다르고 민족 정서가 없지만 미국은 미국인을 끝까지 돌봐주고 책임지는 나라임을 믿으며 이에 대해 노상 감사하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음이다.
미국의 성조기를 떠올리면서 우리 태극기는 너무 괄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곳, 사계절의 아름다움이 있고 단일민족임을 자랑하는 나라, 그러나 너무 가깝고 너무 친하고 너무 허물이 없는 탓일까, 나라의 상징을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속마음 때문일까. 평시 우리의 국기는 관공서 깃대 위에나 걸려있는 별무 관심의 존재다.

태극기는 8.15 해방되던 날이나, 월드컵 축구경기의 열기가 달아오를 때 들고나와 함성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내가 생을 부지하고 있는 나라, 그 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겨레, 그들과 나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동류의식과 공동운명체라는 마음을 이어주는 끈끈한 동아줄이요,
매개체다. 그렇게 해서 발동하는 힘이 바로 대한민국을 세계에 우뚝 서게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태극 음양의 조화 속에 우주와 삼라만상이 그 안에 숨쉬는 진리의 바탕 이에 온 겨레가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되게 하는 국가적 상징으로서의 국기, 우리는 태극기를 더 가까이에서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 일에 정성을 모아야 한다.
아울러 후세들에게도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