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신도 정화

2008-04-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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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회계사)

모든 교회 일의 뿌리에는 평신도가 존재한다. 목회자의 독선이나 타락, 세상적인 욕망, 나아가 세습 등의 주도적 역할을 본의든 아니든 담당하는 것이 평신도이다. 평신도의 자질과 신앙이 점검되고, 질적인 향상도 이루어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평신도가 정화되어야 목회자가 정화된다. 일부 목회자의 독선, 재정적 유용, 공사 구별의 부재, 이러한 모든 부작용들이 평신도들의 방관, 무지, 맹종, 혹은 자신의 유익을 추구함으로 조정된다.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려온 십자가는 누구나 목에 걸기 쉽게 보인다. 고난과 죽음의 상징인 십자가가 일부 잘못된 이들에 의해 영광과 존경, 나아가 물질적 풍요로까지도 보이게 한다. 그를 보고 그 길을 택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 뿌리에는 현명치 못한 성도들이 존재한다.


순종의 방향이 잘못되고 사랑의 방법이 잘못될 때, 목사 뿐 아니라 교회 전체가 방황하고 전 기독교인이 비난과 조롱을 받는다. 소위 이단이 이루어지는 과정도 그 뿌리는 평신도다.현대는 지난 세대에 비해 평신도도 성경적 지식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다. 신은 많은 통로로 자신을 알리고 증거한다. 원한다면 인터넷, 방송 등으로 거의 무한대의 말씀과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평신도도 목회자의 부패를 방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반대를 위한 인내 없는 반대는 신의 뜻과 길을 어지럽힌다. 그러나 목사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아는 것은 평화로울 수는 있지만 그것이 맹종이 될 때 목사를 부패시키는 온상이 될 수도 있다.

목사의 권위는 하늘로부터 주어져야 한다. 목사가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자라 하고, 나아가 스스로 신격화 됨에는 성도들의 공헌이 적지않다. 그를 바로잡는 것에도 평신도의 몫이 있다.
목사를 하나님의 유일한 서자로 여기게 됨에는 초기의 순전한 성도와 진실한 목자로 인해 비롯됐다. 그것이 정말 고난과 사랑과 희생의 십자가를 졌던 옛 시대의 목자들과 지금도 신실하신 목자들에게는 변함없이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 십자가의 기본 본질인 겸손과 희생, 낮아짐을 잊은 이들에게는 그처럼 위험한 생각은 없을 것이다.

목사나 평신도나 오직 진정한 목자는 예수님 뿐이다. 서로가 그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평신도들은 더욱 지혜롭게 보고, 듣고, 행하여야 할 것이다. 평신도가 지혜롭고 깨어있으면 진실하지 않은 이는 목사의 길을 들어서지 않을 것이다.성도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알고 정죄보다는 사랑을, 성도 위에 군림함 보다는 섬김을, 자신의 지략보다는 신의 뜻을 따르고 교회 안에 자신의 왕국보다는 신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최소한 그를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 그런 목자를 분별하는 평신도의 영적인 눈이 밝아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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