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산·하늘·바다, 늘 거기에 있다

2008-04-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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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논설위원)

산은 늘 거기에 있다. 하늘도 늘 거기에 있다. 바다도 늘 거기에 있다. 말이 없다. 하지만 하늘이 한 번 말할 때에는 천지가 진동한다. 번개다. 폭풍이다. 천둥이다. 산은 골짜기를 가진다. 물이 흐른다. 수많은 생명들이 서식한다. 하늘이 말을 할 때에도 산은 말이 없다. 묵묵히 모든 생명을 품어준다. 자라게 한다. 싹트게 한다. 꽃 피게 한다. 열매 맺게 한다.

산은 하늘 향해 모든 걸 보여 준다. 하늘은 햇볕으로 산을 감싼다. 부끄러움이 없다. 산은 산에 있는 온갖 생명을 햇볕으로 감아 품으로 안는다. 바위까지도 안아준다. 고목되어 삭으러드는 썩은 둥치의 뿌리 채 뽑혀진 나무들도 품어준다. 썩은 나무 둥치 속 보금자리 마련한 개미새끼들까지도 제 식구로 보호한다. 모두가 다 하나다.
인간의 욕심이 산을 파헤친다. 금광을 캔다. 다이아몬드를 캔다. 운하를 캔다. 고속도로를 낸다. 골프장을 만든다. 대궐 같은 집을 만든다. 산의 붉은 속살이 드러난다. 핏빛 같은 아픔이 넘친다. 갈라진다. 찢어진다. 구토한다. 용암 같은 눈물을 흘리며 산이 부르르 떤다. 드디어 산도 말을 하기 시작한다. 지진이다. 지축이 흔들린다.


바다. 끝없이 펼쳐져 하늘과 산과 벗하는 바다의 품은 엄마의 품과도 같다. 하늘과 산과 바다. 모두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좋은 벗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바다도 그냥 내버려 두질 않는다. 바다 속을 헤집어 아픔을 준다. 온갖 폐수가 강을 끼고 바다로 흘러든다. 기름이 유출돼 바다가 오염된다. 기름 뒤집어쓴 해조들의 모습이 인간을 원망하는 듯하다.
고등어, 갈치, 도미, 꽁치, 복어, 참치가 반찬 되어 인간의 입으로 들어간다. 모두 바다에서 나오는 생명들이다. 바다가 품어낸 자식들이다. 인간의 혀를 달콤하게 해주는 바다의 생선들. 인간들에게 모두 바쳐진다. 먹다 남은 뼈다귀가 가루가 된 뒤 하수구로 넘어가 폐수가 되어 강을 따라 다시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는 구정물을 마시며 다시 생명을 잉태한다.
하늘과 산에 이어 바다가 말을 한다. “인간들이여 너무 그러지 말게. 지구를 너무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먼. 지구가 인간들을 위해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는가. 한 푼의 대가도 없이 청정한 공기를 만들어 인간에게 공급하지 않는가.

자네들에게 멋진 대지의 아름다움도 선사하지 않던가. 바다의 넓은 품에 그대들을 인도해 시원한 바다 바람을 선사하지 않던가!”
해일. 바다가 인간에게 주는 말이다. 해일이 일기 전 다른 동물들은 모두 피신을 한다. 인간보다 더 지각이 뛰어나다. 인간들. 바다가 격노해 해일로 말을 할 때 그래도 좋다고 노닥거린다. 해일이 일어나 모두 쓸려간다. 해일이 지난 뒤 언제 바다가 말을 했느냐는 듯 다시 그대로 돌아간다. 망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행운이자 불운이다.

그래도 인간의 욕심은 그치지를 못한다. 끝까지 가려 한다. 하늘과 산과 바다와 대적하려 한다. 한판 붙으려 한다. 인간의 욕심, 언제까지 가려나. 햇볕으로 인간을 따뜻하게 해주는 하늘의 너그러움. 흙과 나무로 뒤 덮인 대지와 산의 정기. 모든 걸 씻어주는 바다의 깨끗한 맑음의 기운.
인간이, 인간으로 지탱케 해주는 하늘과 산과 바다를 거스르려 한다.
바다. 하늘. 산. 자연이다. 인간.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인간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자연이 없다면 단 하루의생명도 연장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태양이 없는 지구를 상상해 보았나. 물이 없는 세상을 가
늠해 보았나. 무 공기의 하늘에서 어찌 인간이 살 수 있겠는가.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인간의 욕심. 어찌할 수 없다. 하늘도, 산도, 바다도, 모두 인간의 무릎 앞에 꿇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 하늘은 있었다. 인간이란 하늘의 일부분. 자연의 일부분. 하늘과 산과 바다의 가는 길을 인간이 어찌하랴. 인간, 자연과 친구
가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군림하려 한다. 자연은 인간들에게 소리 없는 말들을 하고 있다. “벗 하자고, 친구 하자고, 우리는 하나라고”.

지구의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들린다면 고막이 터져 죽는다. 인간에게 주는 자연의 배려다. 지구의 날(4월22일)이 지난 지 몇 날 안 되었다. 그날만이 지구의 날은 아니다. 365일 모두가 지구의 날이다. 자연과 인간. 주객이 전도됐다. 인간을 품어 잉태하여 낳아준
지구와 자연을, 인간은 더 이상 배신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폭풍과 지진, 해일의 성난 말로 인간을 또 나무라기 전에. 바다는 늘 거기에, 하늘도 늘 거기에, 산도 늘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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