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깨달음의 진리

2008-04-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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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륭웅(공학박사)

백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며 백번 보는 것이 한번 행하는 것보다 못하고, 백번 행하는 것이 한 번 깨닫는 것보다 못하다고 한다(百聞而不如一見, 百見而不如一行, 百行而不如一覺).

이 말은 우리가 듣고, 보고, 행동하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한 과정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깨달음에 다다르는 것임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깨달음도 없이 듣고, 보고, 행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닐까. 깨달음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같지만 실은 그 반대일런지도 모른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그럴 때 자신이 한 행동을 통해 ‘나’를
아는 것이 더 빠를 수가 있다. 일종의 간접법이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깨닫고 고쳐간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못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여기에 대인과 소인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그냥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할 것이다. 잘못 했는데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반성하는 태도를 통해 당사자의 인간됨, 살아온 과정, 깨달음의 깊이를 알 수 있다.반성할 때는 철저히 반성하고 무너질 때는 철저히 무너져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 일어설 수가 있다. 어설픈 반성은 반성이 아니고 자기 기만이다. 그렇게 살기엔 우리네 삶이 너무 짧다.

깨달음에 이르는 또 하나의 길은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왜 저런 말을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배울 수 있다. 나에겐 이 상대가 가족이다. 1970년 어느 날 내게 아내가 울며 하던 말, “제대하면 우리 가족은 다 굶어 죽는다”는. 그 당시 나는 1963년 육사를 졸업하고 대위로 있을 때였는데 너무나 부조리한 일들 때문에 군을 떠나려고 했을 때 한 말이었다. 아내의 말은 그냥 있으면 밥이라도 먹을텐데 나오면 돈 없고 빽 없고 주변도 없는 남편이 영락없이 백수가 될 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그 때 나는 가장의 책임
을 절감하였다.6.25의 와중에서 6남매를 키운 어머니는 자식들이 당신의 기대에 못 미칠 때 “학도 아니고 봉도 아니고 강산의 두루미도 아니다”라는 말씀을 늘 하셨는데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은 되지 말라”는 뜻이었다.

내 자신이 ‘여자를 보는 눈’을 갖게 된 계기는 나의 형님 때문이다. 언젠가 선을 보셨다길래 어찌됐는지 물어봤더니 “남의 여자를 본 죄로 결혼하기로 했다”는 말씀이었다. 당신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이었다. 근 50년이 지났지만 나는 살아오면서 이렇게 훌륭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오래 전 울고 있을 때 아이가 날 꼭 껴안으며 하던 말, “아버지, 울지 마세요. 나도 울지 않을게요” 하던 말. 그 이후 잘 울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내게 기독교는 아주 중요한 깨달음의 장이다. 전에 누군가 “깨달음이 없이는 기독교를 믿지 못한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말이 내겐 구약을 깊이 공부하는 길로 인도하였다.이 말을 하기까지 한 30년쯤 걸린 듯 하다. 크던 작던 깨달으면 삶을 좀 더 깊고 넓게 보게 되
고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지 않을까.내게 깨달음의 주제는 가족, 신, 자연, 인간인 듯 하다. 깨달음이 있으면 점점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가 있다고 생각된다. 살기 위해서 죽고, 죽기 위해서 산다는 평범한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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