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힘없는 자들을 사랑하라

2008-04-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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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논설위원)

들풀 하나하나의 생명이 귀중하듯 사람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귀중하다. 그러나 들풀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스러지듯 사람도 외세에 눌려 스러지는 경우가 있다. 그 외세란 돈도 될 수 있고 권력도 될 수 있다. 돈과 권력은 힘이다. 외세에 들풀 스러지듯 스러지는 개인의 작은 힘이란 어찌할 수 없는 세상 속 슬픈 현상중 하나다.

세상이 갖는 권력 중 가장 큰 권력은 국가 권력이다. 국가 권력 중 가장 큰 권력은 왕권시대 때에는 왕의 자리요 대통령 중심제의 시대에선 대통령 자리다. 왕과 대통령의 권력은 천상천하유아독존격이다. 누구도 대항할 수 없다. 왕권시대 왕을 대항했던 신하들은 귀양 가기에 바빴다. 대항했다기보다 충언 했는데도 왕에겐 도전으로 비쳐 내침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왕권시대 왕은 대물림이었다. 적자가 세자가 되어 저하란 이름으로 왕의 수업을 받다 왕이 승하하거나 나이 많아 물러나면 전하가 되었다. 왕, 즉 전하가 된 다음엔 천하를 호령한다. 적자가 저하가 되었다 해도 왕으로 승계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긴 있었다. 이방원, 수양대군 등의 왕권 계승이 좋은 예다. 그래도 왕손이어야만 왕으로 대물림을 받아 권력의 중심에 앉았다.

대통령은 대물림의 권력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의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정당의 후보 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가 된 다음 다른 정당에서 나온 대통령후보와의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된다. 그런대, 대통령이 되기 전과 된 후는 천지가 개벽한 만큼 모든 게 달라진다. 된 후의 권력은 하늘을 찌른다. 서민은 감히 대통령 가까이에 접근도 못한다. 미국에선 대통령이 바뀌면 그 힘에 의해 3,000여명의 자리가 바뀐다 한다. 한국도 대통령이 바뀌자 전 정권의 권력에 붙었던 국영 혹은 반관반민 기업체 또는 공직자들이 대거 물갈이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대략 1,000여명 정도의 자리가 바뀔 것 같다. 권력의 중심이 바뀌니 그 소용
돌이가 아래로 미치는 영향이다. 힘과 권력이 좋긴 좋다.

이렇듯, 한반도의 남쪽 나라에선 서서히 권력형 물갈이가 시작되고 있다. 모두 실세에 붙으려 안달이다. 그럼 들풀 같은 사람들, 한 표 한 표로 대통령을 뽑아 준 백성들은 어떻게 되나. 아마 새로운 바람이 불긴 불겠지. 가난하게 자란 한 소년이 자수성가하여 대통령까지 되었으니 힘없는 들풀들의 애환을 잊을 리 없겠지. 모두가 다 잘사는 나라가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들풀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남으려면 슬프지만, 눈치라도 빨라야 한다. 힘 있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지 않아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이렇듯, 눈치 하나로 세상을 먹고사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돈 많은 사람과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빌붙는 것도 최고의 눈
치 중 하나다. 그래야 그들에게서 떨어지는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을 것 아닌가.

친구 중 하나가 이런 말을 한다. “살면서 가장 부러운 사람 중 하나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 부러운 것은 아니다. 부인에게 돈을 안 가져다 줘도 괜찮으니 부럽다. 그는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 단 한 푼의 봉급도 집에 가져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혹은 공익을 위해 썼다. 그는 이번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월급은 한 푼도 손대지 않고 환경미화원 같은 불우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했으며 첫 봉급을 그렇게 했다. 그렇게 살아가야 멋지게 사는 건데, 어찌 이렇게 봉급에 목숨 걸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살아가야 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실정이 아니겠나!”라고. 물론 이 대통령은 재산가다. 사업가였다. 부자다. 재벌까지는 못되어도 그의 재산은 많다. 그는 대선 전 약 300억 원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 하겠다 공언했다. 언제 지켜질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그 마음만은 크게 사고 싶다. 대통령이 된 지금 300억 원이 문제이겠나. 돈 있고 권력 있는 재벌이나 정치인들이 줄을 서서 그에게 정치자금을 대어 이익을 보려 할 테니 그는 재임 기간 중 수많은 재산을 공공연히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니 그렇다.

사람의 발에 밟혀 스러지는 이름 없는 들풀들의 운명. 힘과 권력과는 거리가 멀다. 왕도 대통령도 그 들풀 하나의 생명과 순수함을 어찌할 수 없다. 하늘은 들풀에게 태양을 쪼이고 비를 내리며 바람을 불어 생명 하나하나를 귀중히 보살펴 준다. 사람들은 그런 들풀을 밟고 무심코 지나간다. 사람이란 외세에 밟혀지는 들풀들이나, 돈과 권력이란 힘에 슬픔을 안은 채 살아가는 들풀 같은 서민들이나 거기서 거기다. 힘 있는 자들이여 힘없는 자들을 사랑하라. 그 힘은 들풀의 생명보다 못한 것.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들의 풀과 꽃들은 영원히 피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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