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되살아나는 지역주의

2008-04-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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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일(우정공무원)

일정한 견식(見識)이 없이 남의 말에 이유없이 찬성하며 따르거나, 아무런 비판 없이 타인의 말에 동조하는 것을 부화뇌동이라 한다. 금번 18대 총선 과정을 보면서 문득 87년 14대 총선(민정, 평민, 통일, 신민주공화) 때가 생각난다.

4당이 뒤질새라 목청을 높였던 것은 지역별로 황금분할 해줬다고 유권자들을 정치수준 높은 층으로 추켜세운 뒤 침이 마르기도 전, 3당 합당이란 깜짝 쇼에 국민들은 비판할 겨를도 없이 어리둥절 부화뇌동했던 때가 떠오른다.18대 총선 결과 국회 의석 분포가 잘 배분된 절묘한 결과라고 하기도 하고, 신기할 정도로 최소한의 의석 분포가 있게 한 성숙한 유권자에 경의를 표한다고까지 했지만 14대처럼 깜짝 쇼가 있을 것 같아 또 한번 머리가 휘둘린다.


이번 총선을 보면서 국가의 장래에 암적인 요소가 더 견고해 지고 있는 망국병인 지역주의(감정)가 되살아나고 있어 개탄스럽기 그지 없다. 소위 집권당 대표라는 사람이 부산에 내려가 지난 10년간 대구에 가서는 15년(문민정부 포함)간 받은 핍박과 손해를 이번에 보상받아야 한다며 지역감정에 불을 붙여 자극하자 과거 김종필씨가 핫바지론으로 회생함을 상기, 원칙주의자 명예를 얻었던 충청권 대표는 충청인 자존심을 되찾자고 선동, 한때 대쪽으로 지칭받던 이가 소쪽으로 탈바꿈한 구습의 행태에 연민의 정마저, 김영삼 대통령도 15대 때 대구 유세 중 “우리가 남이가”로 지역 결속을 부추긴 점에서 이에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망령같은 고질병인 지역주의 뿌리는 71년 대선(박정희, 김대중) 때 이효상(당시 국회의장)씨가 대구 지원유세 중 경상도 사람은 뭉쳐야 한다고 한 것이 원조다. 자유당 시대나 유신정권 이전만 해도 이런 지역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라도 출신(조재천)이 대구에서, 경상도 출신(홍익선)이 목포에서 각각 국회의원으로 당선, 해당지역과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당의 전략적인 면도 있었지만 경북출신(이수인:이수성 전총리 실제)이 전남(영광, 함평)에서 당선, 의정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뿐만 아니라 71년 대선 때 박정희, 김대중씨가 호남과 부산에서 각각32%와 40% 이상을 얻었던 사례도 있다. 그런데 최근 선거 결과에서 아예 몰표현상으로 나타난 지역병은 국론이 화합은 커녕 반목, 분열되고 통일이 되어도 국토가 협소한데 남북도 모자라 손바닥보다 작은 땅을 갈기갈기 갈라놓은 정치인들, 후대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대한민국이 건국 의회민주주의를 시작한지 60년이 되는 해로 그리 짧지만은 않지만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나 실망감 및 고질병인 지역주의(감정) 해소를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부화뇌동하지 않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를 악용하는 정치인들에 먼저 큰 책임이 있다.
4년 후면 또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입술로는 지역주의가 망국병이라고 말하지만 내심은 전혀 달라 근절이 불가능할 수도 있어 보인다. 이러한 지역주의 치유를 위해서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 사이에 행정구역인 신규 도(道)를 설정, 충격효과를 반감하든지, 지역감정을 일으킬만한 말이나 글로 불씨를 붙이는 후보나 지원 유세자들은 중형에 처하는 관계법을 제정, 정치권에서 완전히 발본색원한다면 진정한 지역주의를 타개한 새 정부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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