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화 예절

2008-04-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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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길(수필가)

직장에서 전화 안내를 하는 ‘커스터머 서비스’를 오래 했다. 그 당시는 자동 응답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어려움이 더했다. 고객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이었고 가끔씩 예의를 실종한 사람들의 전화로 열 받고 많은 점을 느끼게 했다.

우리 말에 존대어가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조금만 마음이 언짢아지면 사람들은 그 좋은 존대어를 빼버리고 반말로 편하게 말을 한다. 듣는 사람은 감정이 출렁이고 목소리에 감정을 실어나가게 된다. 그 고객은 ‘볼륨’이 높아지고 고객에게 불친절한 직원으로 몰아부친다.전화상으로는 그 목소리가 어리게 들려도 반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상대의 인격을 지켜주는 것은 자신의 인격도 높이는 것이다. 부드럽고 정중한 말씨는 상냥하고 친절한 안내를 받게 될 것이다.


은행같은 곳에 전화로 자기 구좌에 대한 정보를 받을 때는 은행의 규정에 따라 자기 구좌번호, 이름, 소셜번호를 차근차근 요구에 따라 대주어야 할 것이다. 대뜸 전화로 “내 구좌에 얼마 있어요” “구좌번호는 어떻게 되십니까?” “구좌번호 ○○번, 소셜넘버 ○○번” 하고 단숨에 불러준다. 막상 구좌를 열어 소셜번호를 다시 확인하면 “조금 전 불러주었지 않아요” 하고 퉁명스레 쏘아붙인다.

우리 한국인은 지긋이 기다리는 인내심이 부족한 것 같다. 어느 날 전화를 받으니 볼륨이 최고로 올라간 어떤 여자분이 “왜 이 사람 저 사람 바꿔요?” “저는 처음 받는데요” “꾸물대지 말고 빨리 누구 바꿔요” 나는 은근히 화가 났다. “그렇게 매일 화가 나서 말씀하시면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나는 사랑같은 것 필요 없어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자기는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대우를 받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수 백명의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은 모든 고객을 똑같은 입장으로 보다 친절하고 신속하게 일 처리를 기본으로 삼는다. 특별한 대우는 스스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는 겸양의 말씨에서 더 받게 된다는 것을 잊고 지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객을 상대하는 창구에서는 상식에 벗어나는 요구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장 바쁜 아침시간에 자기 업무만 봐달라고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날 어떤 고객의 전화를 받다가 화가 치밀어 수화기를 던져놓고 밖에 나와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화를 삭이고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주여, 이 우스운 꼴을 하고 있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이 너희 친형제요 친자매라도 너는 화만 내고 있겠느냐” 하고 깨우침을 주시는 것 같았다.조금 평온해진 마음으로 자리에 돌아와 다시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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