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밴더빌트 가문이 주는 교훈

2008-04-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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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희(SEK 사무국장)

SEKA 회원들은 매달 첫 토요일에 테마 여행(Thema Trip)을 간다. 집과 직장만 오가는 생활을 억지로라도 잠시 접고 인근 명소라도 찾아보자는 뜻에서다. 우리의 이민생활로 한국 문화가 이 땅에 심기는 게 의미 있듯이 이 땅에 이미 심긴 문화도 우리에게 새롭고 남다른 의미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3월의 여행지로는 롱아일랜드 센터포드의 밴더빌트 뮤지엄이었다. 미국 부호 키샴 밴더빌트 2세가 살았던 저택을 뮤지엄으로 꾸민 곳이다. 롱아일랜드 만을 향해 불쑥 내민 영지는 광대했고 저택은 아름다웠다. 큰 저택을 가리키는 영어 표현에 ‘거의 성체(almost castle)’라는 게
있지만 이 밴더빌트 저택은 ‘진짜 성체(real castle)’다. 남 지중해 스타일로 지어진 성에는 중세식 성문도 육중하게 설치돼 있었고 물을 빼버리기는 했지만 해자도 마련돼 있었다.


그렇다고 밴더빌트 저택의 규모와 호사에 감탄만 하고 온 것은 아니다. 이 날의 테마는 ‘미국 부호들, 번 돈 어떻게 썼나’였다. 그들의 돈 번 이야기는 영웅담처럼 인구에 회자된다. 그러나 그들이 그 막대한 부를 어떻게 처리하고 세상을 떴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피상적인 것 같다.
포브스 잡지는 매년 인류 역사상 최고 부자들의 재산을 현재 달러가치로 환산해 순위를 매긴다. 이 명단에서 최상위를 차지한 10명 중에는 밴더빌트 가문이 2명이나 된다. 윌리암 밴더빌트가 4위, 코넬리우스 밴더빌트가 10위다. 다른 미국 부호로는 존 라커펠러(1위), 앤드류 카네기(2위), 앤드류 멜런(6위), 헨리 포드(8위) 등이 있다.

그런데 밴더빌트의 재산 처리 과정은 다른 부호들과 사뭇 달랐다. 특히 라커펠러와 카네기, 멜런과 포드는 재단을 만들어 거의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 돈은 미 전역에 공공도서관과 박물관과 대학을 짓는 데에 투자됐다. 후손들은 재단에서 지분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보란듯이 산다.반면 밴더빌트 가문은 전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했다. 자식들은 그 돈으로 저택을 짓거나 영지를 꾸몄다. 로드아일랜드에서 플로리다에 이르기까지 밴더빌트 저택이 산재하는 것도 그 탓이다.

그러나 단 3세대가 지나면서 수십 채의 저택들은 밴더빌트 가문을 떠났다. 유지비를 감당못해 팔거나 세금 대신 정부에 귀속돼 박물관이나 공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밴더빌트 후손 중에는 <밴더빌트 가문 몰락기>라는 책을 쓴 사람도 있다.밴더빌트 가문이 남긴 유일한 사회적 재산은 밴더빌트 대학이다. 이 대학은 밴더빌트가 기부한 100만달러를 기초자금으로 설립됐다. 당시 돈으로 2억달러에 달했다는 밴더빌트 재산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돈이다. 그러나 밴더빌트라는 이름이 오늘까지 남은 것은 바로 그 소액의 기부금 때문이다.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욕먹어 가면서 돈 번 것은 카네기나 밴더빌트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카네기는 그렇게 번 아까운 돈을 희사하고 떠났고, 밴더빌트는 그러지 못했다. 덕분에 후손들의 운명도 명암이 갈렸다. 한국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다. SEKA의 이번 테마 여행은 바로 그 속담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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