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총선에서 나타난 정부여당의 책임

2008-04-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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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고문)

지난 9일 실시된 한국의 제 18대 총선 결과는 여당과 야권에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 황금분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 의석 299석 중 여당인 한나라당이 과반수인 153석을, 제 1야당인 통합민주당이 81석을 차지했고 나머지를 군소정파가 나누어 가진 형국이다. 여당은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하여 이명박 정부를 마음껏 뒷받침해 줄 수 있게 되었고 민주당도 80석 이하의 참패를 모면함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은 170석 이상의 압승을 기대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만약 일부 박근혜계 후보들을 공천에서 탈락시키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당선자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간 공천과정에서 빚어졌던 내분 사태가 국민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의 선거는 여전히 쏠림현상에 좌우되고 있음이 또 한번 드러났다. 국민들이 노무현 정부의 후계자를 버리고 이명박을 택했듯이 민주당을 버리고 한나라당을 택한 것이다.


이런 일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 정치가 안정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에서도 공화당 정부와 민주당 정부가 번갈아 교체된다. 그러나 공화당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공화당이 의회까지 장악하는 일은 흔치 않다. 대체로 행정부를 공화당이 장악하면 의회에서는 민주당이 강세를 보인다. 이리하여 좥견제와 균형좦을 이루는 것이 미국식 황금분할이다.

그렇다고 행정부와 의회가 밤낮 싸움만 하여 국정이 혼란에 빠지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의회와 행정부가 대립하다가도 타협을 이루는데 대체로 여론이라는 중간자가 있어서 여론이 우세한 쪽으로 타협이 기울어진다.
이에 비하면 행정부를 장악한 여당이 의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한국의 경우는 국정 운영이 순풍에 돛단 듯이 순조로울 수 있다. 헌법개정을 제외한 모든 의안이 과반수로 가결되기 때문에 야권의 모든 의원이 회의를 보이콧한다고 해도 여당만으로 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이제부터 국회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은 국회에서 무조건 통과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함정이다. 정부는 이제 야당의 반대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고 국민 여론의 향방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될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정부가 정책을 정하면 국회가 통과시키고 정부는 밀어부치는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는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처럼 달리기만 하고 세우는 장치가 없어 사고를 내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지난 번 대선과 이번 총선 결과로 나타난 한국의 정치판도는 노무현 정부 당시 17대 국회와 똑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국회의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다가 그 역풍으로 참패를 하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어 과반수를 차지했다. 이리하여 노무현 정부는 행정부와 국회를 모두 지배했다.그런 노무현 정부는 국회의 지원을 받아 각종 개혁, 과거사 정리, 한미관계 재정립 등 이른바 좌파적 정책을 과감히 추진했다. 그런데 이런 새 정책이 국민 정서와 공감을 이루지 못했고 많은 국민들의 반대를 받았으나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정부와 여당에 의해 계속 강행되었다.

심지어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10%로 떨어졌는데도 여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던가.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었고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에게 과반수의 의석을 주었던 것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열린우리당의 압승을 몰아주었던 국민을 배신한데 대한 당연한 역풍이었다.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새로 출범한 이명
박 정부와 이번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여당이 과거 노무현 정부처럼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오만과 독선에 빠진다면 그와 똑같은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친기업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을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일반 서민들을 도외시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 정부의 주요 공약인 대운하 건설 문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정치적 힘으로 밀어부치기에 앞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행정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5년간 정치적 공과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다. 정치를 잘 해서 국가가 발전하고 국민들이 더 살기 좋게 된다면 이것은 정부여당의 공적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과거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는다면 차기 총선에서 야당에게 패배를 하게 되고 이어 대선에서 정권을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거대 여당에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이번 총선 결과가 진정으로 황금분할인가, 아닌가는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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