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재필과 정치 보복

2008-04-07 (월)
크게 작게
추재옥(의사/전미주 한인의학협회 회장)

18세 장원 급제했던 천재 서재필은 갑신정변 우정국 사건의 실패로 구사일생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채 소련군대의 추격을 받으면서 인천항에 정박해 있던 일본 상선에 올라탄다. 선장은 치외법권을 주장하며 일본으로 데리고 간다.

그는 일본에서 아펜젤러 목사의 성경 통역을 도와주고 있다가 미국까지 오게 된다. 그러나 한국에 남아있던 그의 가족들은 삼족을 멸하는 중형을 받는다.그 소식을 접한 그의 분노와 원한은 아마 하늘에 사무쳤을 것이다. 차라리 웨스트포인트 육사를 가던가 정치학을 전공해서 보복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배워온 한학이나 문과 계통의 학위 취득이 그에게는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리가 먼 전혀 생소한 새로운 학문인 수학, 물리, 화학 등을 시작해서 힘든 의학의 길로 접어든다.


180도 삶이 바뀌어진 것이다. 그는 가시밭길 선각자의 행로를 택해 한인 최초의 미국 의사가 되었다.드디어 금의환향, 고종황제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아펜젤러의 집에 유숙한다. 독립문도 세우고 이승만, 안창호, 이상재 등 수제자들에게 민족 정기를 일깨워준다. 비 오는 날 밀짚모자를 쓰고
찾아온 배재학당 학생 이승만을 손수 만나주고 독립정신을 고취해 준다.
자기 가족들을 몰살시킨 원수들을 찾아내어 복수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벌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모든 복수는 하나님의 손에 맡겼다. 그는 함구무언 모든 원한을 독립신문에 글을 씀으로써 다 승화시킨다.

늦게나마 그의 동상이 워싱턴에 세워졌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이 위대한 천재 거인을 이민 1호로 모셨음을 큰 자랑으로 알고 자부심을 갖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