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용과 거부

2008-04-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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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뉴저지 알란데일의 샐러리 농장에 매 한 쌍이 살고 있다. 어깨가 붉은 희귀종이다. 그런데 한달 전 암놈이 어디에 부딪쳤는지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카스크재크 씨는 자기 집 뒤의 큰 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는 매라는 것을 알고 얼른 경찰에 연락하여 야생 조류 보호소에 보내졌다. 두 주간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한 매는 다시 둥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사이에 다른 암컷 매가 와서 수 컷과 신접살림을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삼각관계가 된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 같으면 대판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들 매 세 마리는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살고 있다고 한다.(레코드 지) 세 마리가 서로를 받아들인 것이다. 한 마리라도 상대를 거부하면 공존은 이루어질 수 없다.수용(Acceptance)은 평화의 방향이고 거부(Rejection)는 충돌의 방향이다. 거부당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청소년이 부모의 거부를 당하면 거리의 불량배가 되기 쉽고,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거부하면 가정이 깨진다. 대부분의 교회 분규도 목사가 거부당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거부당하면 외로워지고 허탈해지기 때문에 파괴적인 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그래서 남도 해치고 자기도 해친다. 인종차별, 성 차별, 계급 차별도 나와 다른 사람이나 계층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민족과 나라 사이도 상대를 얕보거나 거부하면 공존이 불가능하다. 가끔 총기 난사 사건이 생기는데 범인은 대개 거부 속에 살던 외로운 자들이다. 수용, 곧 받아준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남을 수용하는 자세가 이해이다. 잘못을 수용하는 것이 용서이다. 신의 은총을 수용하는 것이 신앙이다. 거부는 사랑을 쫓아내고 수용은 사랑을 두텁게 한다.

래리 도비는 메이저리그에 최초로 발탁된 흑인 선수이다. 그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즈 팀에 들어가 출전하는 첫 날(1949년), 3만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전국의 라디오 청취자들이 귀를 기울였다. 도비의 실력이 얼마나 탁월하기에 감히 흑인이 프로 구단에 뽑혔단 말인가? 극도로 긴장한 탓인지 첫 타석에 선 도비는 어이없이 3진을 먹는다. 몹시 실망한 그는 벤치에 돌아가 두 손으로 머리를 껴안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그 다음 이야기이다. 도비 다음으로 타석에 나간 선수는 구단 최고의 강타자 조 골든이었다. 그는 나가자마자 스트락 아웃을 당해버렸다. 골든 선수는 벤치에 돌아가 도비 곁에 앉아 그와 똑같이 두 손으로 머리를 껴안고 고개를 숙였다. ‘나같이 경험 많은 강타자도 안 맞을 때가 있으니 낙심하지 말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행동으로 나타낸 것이다.

‘우리는 한 배에 탔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는 한 팀이다’는 말과 같다. 이겨도 함께 이기고 져도 함께 진다는 뜻이다. 흥망성쇠의 운명을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사이라면 질투하고 경쟁하고 싸우는 것이 어리석다. 나는 흥하고 너는 쇠해야 한다는 못된 생각이 있기 때문에 약육강식의 짐승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다. 국제화란 말이 유행되고 있지만 그것은 영어 조기교육 같은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국제화 되어야 한다. 다른 인종, 다른 나라 사람에 대한 이질감이 극복되고 누구와도 한 팀이 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결혼, 주거, 여행, 경제, 문화 등에서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마음을 가질 때가 되었다.

4월을 영어로 April이라고 하는데 라틴어 Aperire에서 나왔으며 ‘연다’는 뜻이다. 4월은 문을 여는 달이다. 겨울 문을 열고 봄을 맞이하듯 마음 문을 활짝 열어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구체적인 평화의 길이다. 집단이기주의를 사회학자 이부영 교수는 한국인의 고질병인 ‘끼리끼리 병’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내 회사, 내 교회, 내 집, 내 나라만 무탈하면 이웃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태도는 나의 발전도, 모두의 행복도 저해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한 배에 탔다. 지구촌은 한 팀이다.마음 문을 열고 인간과 역사와 세상을 아름답게 보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해돋이의 기적, 아기의 탄생, 포옹의 따뜻함과 축복받은 식탁, 계절 따라 바뀌는 색깔의 조화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과학자들의 놀라운 발견과 발명, 예술가들의 아름다운 창작과 자유를 향한 저 우람찬 함성들! 아집을 버리고 가슴을 열어야 한다. 상자 속에 자기를 가두지 말고 넓은 하늘을 향하여 독수리와 같이 날개쳐야 한다. 행복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너무 많이 짊어지려고 하지 말고 아이같이 맑고 단순한 마음을 가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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