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땡큐’의 힘

2008-04-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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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규(훼이스 크리스찬대학 교수)

미국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니다시피 하는 ‘땡큐’라는 말이 이민 1세들에게는 익숙하게 입에서 나오질 않는 것 같다. 감사하다는 감정의 표시가 저절로 나와야 주류사회와의 사귐의 문이 활짝 열릴텐데 말이다.

미국에서 십여년 살아온 동료들과 어울려 커피샵에 가서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를 시작할 무렵, 웨이트리스가 물을 컵에 따라놓았을 때 얼른 한 친구가 ‘땡큐’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돌아서 가버렸으니 한 박자 늦은 셈이다.우리는 물건을 사고 파는 거래에 있어서도 손님은 왕이랍시고 상점 주인이 고맙다고 인사하기를 바라지 손님 측에서 고맙다고 인사하기엔 인색한 편이다. 이곳 사회에선 손님이 돈을 치르고 물건을 받아들면서 꼬박꼬박 점원이나 주인에게 ‘땡큐’란 말을 잊지 않는 것을 본다.


살아온 문화환경이 다르다 보니 인식하는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일까, 우리는 손님들이 기꺼이 찾아와서 물건을 많이 팔아주어 수입이 오르도록 해 주었으니 손님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인식인지 모르지만 이곳 사람들은 손님에게 필요한 물건을 주인측에서 구해다가 좋은 값으로 제공해 주셔서 손님측에서 감사를 표시한다는 식으로 인식의 방향이 잡혀있다고 보인다.그래서 이들은 저절로, 자연스레, 습관적으로 ‘땡큐’란 말이 입에서 흘러나오지만 우리는 이들의 문화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느 기간 동안 의식적으로나 의도적으로 ‘땡큐’란 말을 쓰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다.

언젠가 넓은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등에 걸려 한참을 서 있었는데 한 백인 할머니가 손잡고 가던 유치원생 또래 되는 어린 소녀의 흐트러진 옷을 여며주고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어 건너갈 때 어린 소녀는 할머니에게 또렷한 목소리로 ‘땡큐’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내가 감사하다고 말할 때 나의 감사한 마음이 상대방의 정서에 전달됨으로써 소위 감정 이입이 이루어져 고마움의 감정을 공유하게 되어진다. 나의 고마운 감정이 상대방의 감정에 녹아들어가 정서상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의사 교통의 물꼬가 트이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한다.

저술가 로빈손은 ‘감사의 힘’이란 책에서 감사란 말의 힘은 상대방의 나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나 태도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했다. 나에 대해 적대감을 가진 사람을 나의 편을 드는 우군으로, 친구로 만들어낼 수 있는 파워가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한국의 70년대 경제개발 초기 무역업계에서 ‘땡큐 사장’이란 별명을 가진 직물업체 사장의 일화가 있다. 당시 유신정권에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던 때라 회사마다 세일즈맨들이 해외시장에 나가 뛰던 때인데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그는 직접 007가방에 샘플을 넣고 바이어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영어 실력이 땡큐 하나만 자신이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적같은 후일담이 생겨 ‘땡큐 사장’의 얘기는 당시 업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그는 가격이 안 맞아 사지 않겠다는 바이어에게도 시간을 내어주어서 고맙다는 의미로 공손히 땡큐 땡큐를 연발했다고 한다. 매일 만나고 헤어지는 바이어마다 땡큐를 잊지 않고 몇 번씩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어느 날 바이어로부터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오더라는 것이다. 그는 ‘땡큐’ 하나로 새 수출시장을 개척하여 타업체가 생각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오더를 따낸 무역업계의 신화를 일궈냈던 것이다.

우리 이민자들도 한정된 이민사회에서 서로 부대끼고 바쁘게 살다보니 알게 모르게 각박해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땡큐’ ‘감사합니다’ 이런 간단한 고마움의 표시마저 잊어버리기 쉽다.그러나 우리가 이민의 첫 발을 디뎠을 때 막막한 미국땅에서 말이라도 통할 수 있는 동포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가.최근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땡큐’란 말이나 감사의 정을 표시하는 말에는 신체에도 생리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무투자 무비용으로 입에서 자아내는 ‘땡큐’만으로 신체와 정신 건강에도 유익한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는 셈이다. 우리가 서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땡큐’ ‘감사합니다’라고 활기에 찬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이민사회는 더욱 업그레이 된 사회로 도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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