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어몰입교육’과 ‘한국어 몰입 교육’

2008-04-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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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교육가/수필가)

새 정부는 대학을 나와도 간단한 회화 하나 못한다는 현 영어 공교육을 개탄하고 그로 인한 비정상적인 과외수업과 조기유학 등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영어 몰입 교육’ 실시를 골자로 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를 추진 발표했다.

2010년부터 초등 3,4학년과 고 1학년의 영어시간을 영어로만 교육하며, 2012년부터는 초·중·고의 영어시간을 대폭 늘리고 수업을 모두 영어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 발표는 ‘영어 몰입 교육’에 대한 찬반 여론으로 한국사회를 또 한 번 들끓게 하고 있다.‘10년을 배워도 입도 벙긋 못하는 영어교육 확 고치라”는 ‘영어 몰입 교육’을 찬성하는 지난 1월 28일자 조선일보 사설을 비롯하여 ‘영어 몰입 교육, 학교 교육 망친다’라는 한겨례 신문 사설, 평화 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영어 몰입 교육, 한 마디로 미쳤다’고 독설을 퍼붓는 문화평론가 진중권 교수, ‘영어 몰입 정책, 국가 경쟁력 좀 먹는다’라는 제목의 시국 토론회(한글문화연대 주최) 등 날마다 쏟아내는 찬성과 반대의
네티즌들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고국의 현실과는 판이하게 우리가 사는 이 곳에서는 지난 해 10월 이광규 재외동포 전 이사장의 강연회를 시발점으로 한국어 정규과목 추진위원회(공동회장 이세목, 김영덕, 이광호)가 발족되어 향후 10년 동안 뉴욕주에 300여개 초·중·고교에서 한국어가 선택과목이 아닌 정식 제2외국어 필수 과목으로 개설하기 위한 장단기 사업계획을 확정지었다.

우리말 보급 운동을 나는 감히 미국에서 벌어지는 ‘한국어 몰입 교육’이라고 말하고 싶다. 말하자면 한국의 ‘영어 몰입 교육’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강압적이고 인위적인 계획이라면 미국에서의 ‘한국어 몰입 교육’은 그야말로 자연발생적이고 자발적인 운동이라 하겠다.사실 1996년 SAT II 한국어 채택 이후 10여년 동안 우리 한국어는 답보상태에 있었고 어떻게 언감생심 한국어를 미국 학교에서 선택과목이 아닌 정규 과목으로의 채택을 꿈꿀 수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일이라고 그냥 방치해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이 운동은 뉴욕에서 시작하여 미 전역에서 퍼져가고 있고 이 위원회의 사업이 조용히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볼 때 가슴이 벅차오름을 금할 수가 없다. 뉴욕시 학부모회를 시작으로 각 타운의 학부모회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고 ‘하이 한글’ 캠페인 특별 강연회는 성공한 1.5세, 2세들이 중심이 되어 매월 4째 토요일마다 플러싱 열린공간에서 전경배 판사, 최준희 에디슨 시장, 황성철 변호사 등의 강연이 어김없이 실시되고 있다.

때는 2007~2008학년도의 한국학교 봄학기가 시작되어 각 한국학교마다 한국어 수업이 무르익어가고 있고 한국학교의 교실에서 울려퍼지는 우리 말 소리가 귀에 쟁쟁하며 또 각 학교에서 실시되는 한국어 동화대회, 동요대회, 나의 꿈 말하기 대회 등이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렇다. 세계 문자 중에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글자는 한글 뿐이라는데 세종대왕께서 어리석은 백성을 위하여 음양오행의 철학을 바탕으로 음성 기관을 본따서 친히 창제하신 이 한글,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을 기준으로 한 세계 문자 콘테스트에서 순위 1위를 차지한 한글, 수 년 전 프랑스의 언어학자 학술대회에서 한국어를 세계 공통어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토론했다는 우리 말, 세계 정보사회의 컴퓨터 조합 원리와 완전히 일치하여 컴퓨터와 핸드폰의 자판에서 가장 우수한 우리 한국어를 우리 2세들로 하여금 세계화하는데 앞장서게 해야 겠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한국어가 미국 각 학교에서 정식 제 2외국어 필수과목으로 반드시 채택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한국에서의 영어 교육과 미국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이렇게 사뭇 다르고 참으로 아이러니칼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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