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이의 입장에서

2008-04-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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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정(뉴욕가정상담소 카운셀러)

부모 상담을 하다보면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보기보다는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해 보라는 말을 강조하게 된다. 사실 쉬운 말인듯 보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한다는 것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말도 없어 보인다.

잘못 이해하다 보면 아이의 모든 행동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오냐 오냐하라는 말로 착각하는 부모들도 있고, 아이의 입장에서 보니 아이의 모든 문제가 당신들의 문제인 것으로 보여서 아이의 문제 모두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있다.실제로도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많다보니 아이의 친구관계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알아야 하고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거나, 아이가 조금이라도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면 걱정과 불안으로 안절부절하는 부모님들을 만날 때가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이면서도 반면에 미성숙하고 돌보아줘야 할 존재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를 과잉으로 걱정하고 책임지려 하다보면 아이가 사회를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책임감, 독립심, 자율성 등을 잃게 된다는 것에 대한 통찰은 없다.아이를 학교나 학원, 방과후학교 등 여러 사회적인 장소에 보내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갈 때 부딪칠 수 있는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적절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아이를 과잉 보호하려는 부모는 아이가 요청하지 않는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다보니 항상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차 힘들어 한다. 또한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의지 없이 부모가 시키는대로 하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에 불안과 걱정을 나타낸다.
그래서 숙제도 힘들면 부모가 어떻게 해결해 주겠지를 바라며 하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리고 학교나 학원, 방과후학교 등도 재미가 없거나 힘들면 가지 않으려 하고, 친구와의 조그만 문제도 쉽게 좌절하는 등 책임감이 필요한 문제들을 포기하거나 회피하려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릴 수 있다.

부모들은 힘들어하는 아이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안스럽고 불쌍해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지하게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해 보면 부모의 그런 태도들이 아이가 건강한 청소년, 어른으로 자라는데 꼭 필요한 책임감, 자율성, 독립성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인간은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힘든 문제가 있을 때 부모나 주위의 지지와 사랑을 받고 적절하게 의논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혼자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아이의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해 보려고 하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주의깊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아이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합리적인 방법을 같이 의논해 나가다 보면 아이는 스스로 문제해결 능력을 찾게 될 것이다.

아이로 인한 걱정과 불안이 많다거나, 아이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부모와 이야기하기 싫어한다거나 아이가 하는 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부모들은 부모 상담이나 아이와의 대화방법 교육 등을 통한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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