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출발과 보은 음악회

2008-03-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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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황석(전 뉴욕약사회 회장)

배재와 이화는 한국 최초의 사립 남녀 고등학교다. 1885년 배재가 설립됐고 1886년에 이화가 문을 열었으니 한 살 터울이다. 게다가 부모(?)가 같으니 배재, 이화는 명실상부 남매지간이다. 두 학교 모두 미국 감리교 선교부에서 세웠기 때문이다. 배재는 남자 선교사 아펜젤러, 이화는 여자 선교사 스크랜턴이 세웠다. 배재와 이화는 고색이 창연한 덕수궁 뒷담길 정동에 담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있는 남매 학교다. 배재는 1년 앞선 오빠인 셈이다.

배재와 이화는 남매답게 공통점이 많다. 체육, 음악을 강조한 미국식 전인교육을 실천한 배움터이다. 배재 남성합창단, 이화 여성합창단은 고교 합창의 진수였다. 졸업 후에도 노래를 많이 한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영원 무궁하도록…> 두 세명만 모이면 불러대는 아펜셀러 작사곡의 교가에 맞추어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자는 배재인이 꽤 많이 있다. 이화여고는 명문 이화여대로 발전하여 한국 여성계의 여왕자리를 누리고 있는데 배재는 위대한 동창생 이승만 박사가 몰락한 이후부터 맥을 쓰지 못하고 계속 전통만 우려먹고 있는 늙은 호랑이가 되었다.


이화여고는 시집 잘 간 누이처럼 졸업 후에도 활동이 활발하다. 지난 해에는 50여명의 이화 OB합창단이 초대 교장 스크랜턴 선교사의 고향 오하이오를 찾았다. 교장선생님의 무덤을 찾아 묵념을 올리고 그녀가 다녔던 교회에서 합창을 했다.배재도 오빠 노릇을 하느라 금년에 보은 방문길에 나선다. 서울에서 오는 배재 88코랄과 LA 배재 코랄이 세 곳을 방문하여 연주한다. 이화 OB합창단도 찬조출연차 동행한다. 3월 28일에는 미국의 수도를 방문하여 워싱턴한인교회에서 음악회를 연다. 29일에는 필라델피아로 올라와 우리 이민자의 사표가 되는 선각자 서재필 박사(Philip Jaisohn)의 유품이 보관된 서재필 기념관을 찾는다. 30일 아침에는 배재 창시자 아펜셀러 선교사가 다녔던 랭카스터 제일감리교회에서 감사 찬양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볼티모어의 Lovely Lane 교회를 찾는다. 이 교회는 미국감리교회의 모교회로서 한국 선교를 크게 도왔다. 1883년 뉴욕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Lovely Lane교회의 담임 가우처 목사는 낯선 동양인을 만난다.

보빙사절단으로 와 있던 민영익 일행이었다. 강렬한 인상을 받은 가우처 목사는 ‘감리교 세계선교부’에 한국 선교를 건의하자 아펜셀러가 파견된 것이다. 가우처 목사의 Lovely Lane교회는 지속적으로 헌금을 보내어 한국 선교를 크게 도왔다.서재필 박사와 손을 잡고 배양영재(培養英才)에 평생을 바쳤던 배재의 아버지 아펜셀러, 1902년 목포 앞바다에서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해내고 자신은 그대로 익사한 아펜셀러. 그 분의 자녀들도 아버지를 이어 한국을 찾아 딸 알리스는 이화학당에서, 아들 헨리는 배재학당에서 조선의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아펜셀러가 한국에 감리교 선교를 시작하고 배재학당을 세운지 123년이 되었다. 아펜셀러도 가고 그 자녀들도 갔지만 그가 뿌린 한국 감리교회는 세계 제 2의 교세로 성장했다. 그와 그의 동역자들이 세운 배재학당, 이화학당의 졸업생들은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뛰고 있다.모든 생물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면서 봄이 왔다고 노래를 하고 있는 이 때 겨울의 무거운 옷을
벗고 화사한 봄에 맞는 옷을 입고 미국에 감사하다고 노래를 불러야 되겠다.침체의 늪에 빠져가고 있는 나의 모교가 보은 음악회를 하면서 기뻐하는 저들의 마음같이 봄의 노래를 하면서 오늘과 내일을 향해 힘차게 약동할 것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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