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2008-03-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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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2부 경제특집부장)

미국에서 흑인 노예 시대를 ‘(흑인들이) 근대적인 의미의 인간으로 탄생한 시기’라고 말한다면, 모르긴 해도 그 사람은 편하게 잠자기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한국에서는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 시대가 ‘경제 발전에 공헌했던 시기’였다고 찬양해도 편하게 잘 수 있는 모양이다.

‘신 우익’이라는 뉴라이트 계열이 최근 공개한 역사 교과서인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는 일제 시대를 ‘공업화와 산업화 기반 시설을 마련한 시기’라고 적고 있다. 또 명성황후를 ‘민왕후’라고 표현하며, 대한제국을 ‘보수정권’, ‘전제국가’ 등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심지어 일제 강점을 단순히 일본정부의 ‘한국 병합’으로 서술했다.
이밖에도 일제 시대와 친일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저변에 깔려있어, 일제의 통치를 미화하려는 대목이 적지 않다고 한다.


뉴라이트의 교과서 포럼은 지난 2006년 당시 교과서 개정 방향을 설명하면서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으로, 4.19 혁명을 ‘4.19 학생운동’, 유신 체제는 ‘국가 집행 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 전두환 정권은 ‘발전 국가를 계승한 정권’이라는 식으로 표현해 여론의 질타
를 받은 적이 있다.이들의 목적은 한 마디로 독재와 친일의 역사를 정당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 식민지가 됐든, 노예가 됐든 간에 근대화만 이루면 된다는 근대화 지상주의에 의거, 편향된 시각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바라본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책을 만들어놓고 이를 교과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교과서 편집에 참여한 필진들의 면면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안병직, 이영훈 서울대 교수와 차상철 충남대교수,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등 12명이지만 이중 정통 역사학 전공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안 교과서의 제작 이유로 한국 근·현대사가 너무 좌파적 시각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대안 교과서를 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우파적 시각은 어떤 것일까.이영훈, 신지호씨의 경우 예전에 “정신대는 일제가 강제로 동원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라는 주장했다. 안병직씨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일제하에서 한국이 근대화하고 잘살게 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일본 우익의 시각과 거의 차이가 없다. 차라리 일본이 주장하는 역사 왜곡이라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우파적 시각이 이런 수준이라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좌파가 될 수밖에 없다. 참으로 허망한 좌파, 우파 구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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