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혜진이와 예슬이가 미국에 살았다면

2008-03-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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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뉴욕 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임상심리치료사)

지난 해 크리스마스 때 안양에서 실종되었던 한국의 두 어린아이 혜진이와 예슬이가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고 현재 용의자인 정 모씨가 체포되어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심문과정을 통해 속속들이 밝혀지는 범행의 내막들이 너무 끔찍해서 우리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주고 있다. 어린 딸을 둔 아빠로서 간접적인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성 증상이 생겨서 며칠간 우울하고 속상하고 식욕도 떨어졌다.

도대체 한국 나이로 8살과 10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참혹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을까. 전과 7범으로 성폭행 가해자로 조사까지 받고 부녀자 연쇄 실종시간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정 모씨가 활개를 치고 다니며 범죄행각을 벌이고 있을 때 사법당국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속속들이 드러나는 수사 협조체계의 허점들, 빈약한 수사력, 약자 보호제도의 근본적 문제점들은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거론되는 단골 메뉴들이다.


이 사건의 책임은 범행 당사자인 정 모씨에게 있다. 처음 경찰에 체포되어서 두 아이들을 전혀 모른다고, 억울하다고 태연스럽게 부인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범행을 시인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대학을 나온 고학력 지능범죄자 답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살피면서 범행을 자백하고 있다. 처음에는 교통사고라고 하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반항해서 죽였다고 계속 진술을 교묘하게 번복하고 있다.

과거의 성폭력 경력과 컴퓨터에 저장돼 있었던 수 백편의 포르노 동영상들, 강간을 목적으로 한 마취제 제조, 은둔생활을 해왔던 평상시의 모습등을 종합해 보면 전형적인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성도착증을 가진 사이코패스(Psycho-path)가 저지를 범죄이다.사실, 사이코패스는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오히려 한국보다는 미국에 성도착증이나 소아기호증을 가진 성폭력 범죄자들이 더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더 많은 인구와 사회적 문제들을 가진 미국에서는 이런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것일까. 더 나아가 왜 한국사회에서 유달리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유괴, 성폭행 등이 빈번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그 해답은 아동을 비롯한 약자를 보호하려는 법과 제도의 차이에 놓여있다. 미국 사회라고 처음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강력한 아동보호법과 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뉴욕에서 아동폭력예방협회(SPCC)가 생긴 것은 1873년에 메리 앨랜 맥코막이라는 아홉살짜리 고아가 함께 살던 사람들에게 옷도 없고 잠자는 침대도 없이 매질을 당했던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그것도 아이러니칼하게도 동물학대예방협회에 의해 폭력 가해자가 법정에 넘겨지고 1875년에는 아동폭력예방협회의 창립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뉴욕에서 현재의 아동학대 보호제도가 확립된 것도 1969년에 록 센느라는 아이가 아동 학대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현재 뉴욕은 아동국이라는 아동보호를 총괄하는 기관이 아동이 폭력과 방임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엄격한 처벌제도와 보호제도를 담당하고 있다.이에 반해 한국의 아동보호법과 제도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지난 해 비디오를 돌려주러 나갔다가 신발가게 주인에게 열 한살짜리 여자아이가 성폭행 당하고 살해 유기된 용산 사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아동 성폭력 보호제도와 처벌제도의 강화를 주장했음에도 이 시점까지 달라진 점이 별로 없다. 한국을 방문해 보면 10살 미만의 아이들이 보호자의 감독 없이 밖에서 길거리를 배회하고 다닌다. 아무도 이것을 문제삼지도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는 것을 보고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번 안양 초등생 사건도 미국 나이로 일곱 살과 아홉 살 먹은 어린아이들이 밖에서 놀다가 사이코패스의 범죄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범죄의 일차적 책임은 범죄당사자에게 있고 또 빈약한 수사체계와 사법제도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아동보호법과 제도의 대대적인 개혁 없이는 또 다른 어린 희생자들이 엽기적 범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지금도 실종된 어린 자녀들을 찾아 생계를 전폐하고 전국을 누비는 수많은 실종된 어린이 부모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언제까지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유괴되고 성폭행 당하는 것을 간과할 것인가. 혜진이와 예슬이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허술한 법과 제도의 희생양이다. 만약 이들이 미국과 같은 나라에 살았다면 부모나 보호자 없이 혼자서 밖에 나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너무나 가슴 아픈 엽기적 성폭행 범죄의 희생양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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