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성격은 바뀌어질 수 있다

2008-03-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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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논설위원)

사람의 성격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천성으로 태어나는 유전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후천성으로 생성되는 것도 있다. 아마 전자 보다는 후자가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피와 살에 섞인 유전자적 요인보다는 태어나 자라는 환경이 그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는 주요인이 될 수 있다.

환경 중에 가정환경은 그 어떤 환경보다도 중요하다. 가정환경 중에서도 어릴 때의 환경은 더 중요하다. 능동적이지 못한 어린 나이 때는 모든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은 어린아이의 성격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인 부모라면 그 아이는 90% 이상은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아이가 자라면서 가는 곳은 학교다. 학교는 공동생활을 알게 하는 최초의 사회 단위가 된다. 학교라면 유치원 때부터 대학 정도에 이르기까지다. 장기간이다. 대략 17년 정도가 소요된다. 사람의 성격발달은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학교란 공동생활의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부모의 역할 영향을 떠나 학교에서 받는 이 기간에 성격은 거의 형성되기도 한다.


학교는 선생이 있다. 친구가 있다. 서클 활동이 있다. 봉사활동도 이 때 활발하게 전개된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지만 성격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 스승에 그 제자”란 말도 있듯이 학교를 나와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행해 나갈 수 있는 밑받침이 학교 교육을 통해 이룩된다. 예외는 있다. 에디슨처럼 학교를 다니지 않았어도 성공한 케이스다. 학교를 다닐 때도 수동적인 생활은 연장된다. 어릴 때부터 고학을 하여 자립하는 학생들도 있긴 하다. 그러나 대부분 부모의 능력 아래 학비를 의존하고 용돈을 타 쓰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때도 부모의 역할은 자식의 성격발달에 학교교육과 마찬가지로 큰 영향을 미친다. 학교가 지
식을 확보해 주는 장소라면 가정은 부모의 영향아래 정서를 함양시켜주는 곳이 된다.

학교와 가정. 부모와 자신. 선생과 학생관의 관계. 둘 다 성격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마음과 마음을 통한 대화와 지식 전달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크라테스와 플레이토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진 스승과 제자관계는 지식의 전달과 더불어 이어진 인격형성의 채널을 보여준다. 좋은 학교가 왜 좋으냐 하면 좋은 스승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천성이든 후천성이든 사람의 성격은 인격과 상존하여 사회성을 유지해 나가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성격이 인격이요 인격이 곧 성격이 될 수도 있기에 그렇다. 인격은 하루아침에 형성 안 되듯 성격도 수많은 날들의 결집이다. 그런데 그 결집된 안 좋은 성격은 변화될 수 있을까.

있다. 마음먹기와 훈련하기에 따라 성격도 바뀔 수 있다. 노력하면 된다.
사람의 성격에는 좋은 성격도 있고 나쁜 성격도 있다. 좋은 성격을 ‘좋은 성품’이라 하면 나쁜 성격은 ‘성질·성깔’이라 하겠다. “저 사람 성질 정말 더러워”라 말하지 “저사람 성품 더러워”하지는 않는다. 좋은 성격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진 사람. 화를 내지 않고 참는 사람. 대안을 제시하며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 전체가 다 잘 되어 나가기를 바라는 사람 등이 아닐까.

성격은 모두 다 똑 같을 수는 없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격의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차이로 인한 서로간의 불이익과 불편은 없어야 한다. 특히 사회성을 요구받는 단체나 회사일 경우다. 자신의 성격이 모가 있다 생각되면 그 모난 각을 깎아 남을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모두가 다 평화스러워지고 일도 잘되어 갈 수 있다.
성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피스메이커와 트라블메이커로 분류할 수도 있다. 피스메이커는 말 그대로 평화, 즉 화평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좋은 쪽으로의 분위기 메이커다. 가정, 단체, 직장 등 어디에서나 반드시 필요로 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허나, 트라블메이커는 말 그대로 분쟁만 일으키려는 성격의 소유자다. 매사 불평과 불만에 대안은 없다.

트라블메이커도 피스메이커로 성격을 바꿀 수 있을까. 있다. “태어난 성정이 있고 환경에 따라 자라기를 그렇게 자랐는데 어떻게 성격을 바꿀 수 있나” 그렇지 않다. 바뀔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줄 아는 눈과, 남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귀와, 남이 두 마디 할 때 한 마디만 할 수 있는 입 등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노력하면 가능하다. 성격 좋은 사람을 모델로 하여 그를 모방하는 것도 괜찮다. 성격 탓을 태어난 곳, 환경에 돌릴 것은 아니다. 부단한 성찰과 노력을 통해 변화돼 새롭게 태어날 좋은 성격을 기대해 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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