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무와 인생

2008-03-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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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뉴욕베데스다교회 협동 목사)

어느 해던가 광릉 숲에 한 떼의 여대생들이 모여들었다. 잠시 후 그녀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흩어지면서 각기 나무 한 그루씩을 가만 가만 안아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대학 교양학부의 수업시간이었는데 담당교수가 “나무를 알려면 나무를 안아보라”는 명언의 말씀을 몸소 느껴보고 실행해 보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고요히 눈을 깔고 나무를 안아보고 있던 한 여대생의 청순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우리는 나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나무는 늘 우리 곁에 있어 우리들의 그늘이 되어 주고 열매도 내어주며 건축자재가 되는가 하면 공기 청정기 역할도 하여 준다.그 중에서도 소나무(松)는 나무로서는 유일하게 공(公)자를 달고 있다. 그만큼 공공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이며 떳떳하다. 그 빛깔 역시 늘 청정하여 우리 민족의 기개를 상징한다.


우리의 애국가에서도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철갑을 두른 듯 푸른 하늘 아래 우리 민족의 당당한 역사와 절개를 나타내고 있지 아니한가.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꽃이 있듯 그 나라를 대표하는 나무가 있을 터,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는 소나무다. 정약용선생의 어느 글에도 나온다.
<대궐 명당 낡아서 무너질 때, 긴 들보 기둥되어 나라를 떠받들고, 섬 오랑캐 왜적이 달려들 때 네 몸은 큰 배, 거북선 되어 선봉을 꺾었느니> -- 蟲食松이란 詩에서지금 내 나라에서 들려오는 훈훈한 소식은 전국의 착한 백성들 가운데 우리집 나무를 베어다 남대문 재건축에 써달라는 간절한 호소(?)가 관계당국에 쇄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번 뉴스를 보니 시골의 어느 가난한 농부가 자신의 산에서 기르는 소나무를 남대문 대들보용으로 써달라고 호소하여 건축 관계자들이 내려와 나무를 조사하는 과정이 보도됐다. 결론은 대들보용은 되지 못하고 윗부분 어디엔가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전문가들이 말하는 윗부분이 정확히 어느 부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소나무의 주인은 그래도 쓰일 수가 있다는 그 말 한마디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그는 조상대대로 보물처럼 아껴오던 아름드리 소나무를 쓸어안으며 환히 웃었다.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이 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 깨달았다.

그 농부가 자식에게 어르듯 조용조용 나무에게 말했다. “잘 가거라, 가서 좋은 일 오래 오래 하여라”이 세상은 어차피 선과 악이 공존하게 마련인데 그래도 이 세상이 끝장을 내지 않고 이 만큼한 모습을 유지한 채 흘러가는 것은 악인 보다는 선인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분명한 것을
우리 아이들(후손들)에게 얘기해 주자. “나쁜 사람 보다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이 세상이란다. 이 말을 꼭 명심해야 한다”지금 미국이나 한국은 나라의 동량재를 뽑는 계절이다. 부디 좋은 사람들이 등용되어 좋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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