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인면수심(人面獸心)

2008-03-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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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요즘 본국에서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파렴치한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어 뉴스를 대하기가 겁난다. 최근에는 한 때 프로야구 선수로 명성을 날렸던 사람이 단지 돈 때문에 평소 친하게 지내오던 4모녀를 끔찍하게 살해해 암매장하고 자신은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은 희대의 사건이 일어나 세인을 놀라게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또 두 명의 실종된 초등학생이 알몸 토막 상태로 암매장된 것이 밝혀져 자식 키우는 부모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이렇게 잔혹한 사건들이 잊어버릴 만하면 또 터지고, 또 조용하다 싶으면 또 다른 끔찍한 사건이 터지곤 한다. 아직도 우리 기억에 잊혀 지지 않는 연쇄살인 사건으로는 63년 군인 고재봉이 직속상관의 일가족을 살해한 강원도 도끼 살인사건, 70년대에는 사회의 냉대를 비관한 전과범 김대두가 무작위로 17명을 살해한 사건, 82년 경북 의성에서 경찰관 우범곤이 총기를 마구 쏴서 수십 명의 마을 주민을 살해한 사건, 80년도에 들어서 10여 년간 10여명의 여성이 지속적으로 살해된 경기도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아직도 미제 사건으로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있다.


94년 추석 무렵에는 살인공장 지존파의 금품을 노린 엽기적 살인사체 유기 사건이 발생하더니 유사범죄로 온보현 사건, 96년에 들어서 범죄조직 막가파의 살인극, 98년에는 조폭집단 영웅파의 살인극이 세상을 어지럽게 했다. 2003년부터 2004년 사이에 부녀자와 지체장애자 21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사건은 정말 떠올리기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사회 부적응자인 그는 검거되지 않았지만 100명을 살인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미국에서도 조승희가 쏜 총탄에 30여명의 무고한 학생들이 목숨을 잃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유사한 사건으로 언론에 최초로 기록된 사건은 1921년에 조선인 이판능이 일본 동경에서 모욕감을 이기지 못하고 주민 17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사건이다.

이런 사건들은 망각해버리기 어려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건들로, 인간의 탈을 쓰고는 차마 할 수 없는 악행들이다. 이런 무자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인간의 얼굴로 짐승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하지만 동물 행동학자 로렌츠는 어떤 동물들은 전혀 동족을 공격해서 죽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인간에게 동족을 살해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어 살인적인 만행을 저지르거나 잔혹한 집단 살인극을 자행한다는 것이다.무엇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잔혹한 사건을 저지르는 것인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악하게 만드는 것인가.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 마다 우리가 생각해 보는 것은 인간이 본래부터 악하게 태어났는가, 아니면 본성은 착하게 태어났는데 후천적인 요인, 즉 가정적이나 사회적인 배경에 의해 악해졌는가, 그리고 인간의 잔인함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순수하게 태어났으나 세상과 부딪치고 때가 묻다보면 악해진다고 보고 본래의 선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면 교육을 받고 지식을 얻으면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성악설을 주장하는 순자는 인간은 본래 동물적인 욕구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주변의 가르침과 수행으로 악한 본성을 다듬어 착해지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보면 태어날 때부터 악하던, 선하든 인간은 주위 환경으로부터 잘만하면 심성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일이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 그림에 등장하는 13명의 인물은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을 모델로 해서 한 사람씩 그린 것인데 그 중에 한 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델로 인상이 아주 맑고 용모가 준수한 미남 청년이다. 이 그림이 거의 완성이 되어 가는데 배신자 가롯 유다의 모델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2년여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술과 고통으로 찌든 얼굴을 가진 한 범죄자를 발견해 가롯 유다의 모델로 적합하다 보고 그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남자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은 즉, 두 해 전에 바로 자신이 예수의 모델이 되었던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어느 살인자가 “내 안에 악마가 있다고 했다”고 하지만 인간이 악마가 되거나 천사가 되는 것은 100% 자기 선택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래서 살인범을 사형에 처하는 게 아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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