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왕수샹

2008-03-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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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어려울 때는 단 한번만의 도움으로도 재생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 1952년에 생을 마감한 왕수샹은 산동성 가오요란 도시를 삼킨 대홍수의 참상을 가슴아픈 비참한 경험으로 거울삼아 가요오의 운하를 현대적 공법으로 수리하면서 제방을 다시 쌓은 사람인데 그 옆에는 미국에서 파견한 헤리스버거란 선교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도시를 재건할 수 있었다.

세월이 많이 지난 2005년 여름, 왕수샹의 손자와 해리스버거의 손자는 팔짱을 끼고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가요오 언덕에 높이 세워진 조상의 기념비 앞으로 한 송이씩 꽃을 들고 들어갔다. 가요오 시민들은 가요오에서 생을 마감한 해리스버거를 통째로 자비라고 불렀고, 또는 자비인이라고 불렀다.1931년 예상치 못했던 태풍이 가요오를 덮쳤을 때 운하가 범람하는 대홍수로 도시가 온통 물에 잠기고 수십만의 인구가 죽어나갔다. 운하가 범람한 까닭은 황토 흙으로 쌓아올린 옛날의 허술한 제방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교통수단이라야 우마차 아니면 당나귀 등이나 사람의 등 뿐이었던 옛 중국에서는 운하를 파서 교통수단으로 삼았다. 쌀 농사를 일년에 두 세번씩 하는 남쪽에서 북경으로 식량을 운반하기 위하여 항주로부터 북경까지 판 대운하 뿐만 아니라 중국에는 여기저기 운하의 시설이 발달하였다. 운하를 이용하면 대량수송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가요오의 운하도 그 중 하나였다.물에 잠기는 가요오를 보면서 왕수샹은 운하의 제방을 다시 쌓아야 되겠다고 결심을 했으나 기술적인 문제와 자금 확보의 난제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 때 만난 사람이 미국에서 파송되어 선교활동을 벌이던 해리스버거였다. 해리스버거는 왕수샹을 적극 도왔다. 미국에서 제방을 쌓는 기술과 설계까지 구해서 도왔고 미국의 교단과 시민들에게 대홍수의 재난으로 고통을 받는 가요오를 알리면서 막대한 자금까지 모아 왕수샹을 도왔다.

그는 왕수샹과 더불어 일선에서 진두지휘를 하며 돌과 콩크리트 제방을 완성하여 지금까지 여름이면 몰아치는 태풍의 홍수로부터 가요오의 도시를 안전하게 지키고 있다. 그러나 강물의 오염이 심각한 상태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운하 작전에 돌입을 한 모양이다. 명분인즉 항구까지 운반해야 하는 대량물품 육로수송에 있어서의 경비와 시간을 절약하고 내륙에 흩어져 있는 각 지방의 물품 소통을 역시 시간과 경비를 줄이면서 대량으로 운반할 수 있고 아울러 관광상품으로도 각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거기에는 찬반 양론이 있게 마련이고, 어떠한 결론에도 거기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옛날의 중국이 세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교역에 성공한 것이 실크로드에서 쓰던 소규모 육로운반 수단에서 대량 해상수송 수단으로 바꾸었기 때문인 것은 사실이다.
거대한 무역선이 서울 하치장으로 들어오고, 거대한 유조선이 내륙으로 들어와서 기름을 퍼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유통의 질서는 바뀌게 될 것이다.세상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좋을 경우가 있고,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좋을 경우가 있다.

아무리 좋아도 잘못 쓰면 없는 것보다 못하고 아무리 시원치 않아도 잘 쓰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 사람도 쓰기에 따라 새롭게 가치가 있게 되거나 있던 가치도 없어질 경우가 있다. 쓰임새가 있는 사람을 가려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람을 쓰기란 그보다도 더 어렵다.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발탁해서 장관을 시켰더니 뒤가 깨끗하지 못해서 단명으로 끝을 낸 사흘 장관도 생겼고,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장관에 기용했더니 그 분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국민의 반발로 물러난 사람도 그동안 참으로 많이 보아왔다. 또한 별반 기대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 의외로 일을 잘 하고 물러난 사람도 허다하다.

세상 일이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운용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인데 앞으로 운하가 생겨나더라도 누가 그 운하를 오염과 공해 없이 안전하게 잘 운영할 것인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왕수샹과 해리스버거는 가요오를 재건하고 지켜낸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이런 사람이 한국에 나타나야 하는 재앙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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