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서울을 다녀와서

2008-03-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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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태어남과 삶과 죽음은 계속된다. 그로인해 세상은 이어지고 역사는 반복된다. 수명이 다하여 호흡을 멈추는 목숨이 있나 하면 이제 갓 태어나 방긋거리는 아기의 재롱도 있다. 만나 서로 짝을 지어 새 보금자리 핑크빛 향기에 젖어 있는 청춘이 있나 하면 손자 손녀의 방긋거림에 늙어 감을 잠시나마 잊어버리는 노년도 있다.

인생이란 이렇듯 돌고 도는 것이던가. 한 생명이 태어나는가 하면 한 생명은 가고. 또 오고 또 가고. 와서 기쁨을 주고, 가서 슬픔을 주는 인생들. 그것이 생이며 삶이 아니던가.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화살처럼 가버린 세월들. 깨어보면 꿈. 꿈같은 몽롱한 삶이 펼쳐지는가 하면 가혹한 현실은 또 꿈을 깨어버리고 차가운 삶을 헤쳐 나가게 한다. 서울과 뉴욕. 한국과 미국. 뉴욕에 사는 사람들과 서울에 사는 사람들. 모두들 삶을 살아가기에 바쁜 모습들. 아니 살아남기에 최선을 다하는 신성한 몸부림들이다. 새 대통령이 탄생한 한국과 서울. 그리고 시골풍경들. 총선을 앞두고 걸려 있는 국회의원 출마후보들의 플랜카드들. 새로운 정권의 출범에 서울 하늘의 약동이 봄기운과 더불어 넘실댄다.


그런데 느껴지는 것. 삶의 차별이다.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금물. 태어날 시부터 차이는 있는 것. 살아가면서도 차이는 있는 것. 허나 차별적인 삶은 서울이나 뉴욕이나 매 마찬가지다. 자유시장주의. 자본주의. 경쟁사회. 약육강식. 있는 자는 그 있음으로 인해 더 늘려 갖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없음으로 인해 빼앗기게 되는 세상. 서울과 뉴욕의 하늘이 맛 닿아 있다. 벽제. 화장터가 있는 곳이다. 하루 120구의 시신이 화장을 한단다. 삶이 마감돼 재로 변하는 곳이다. 최신시설로 돼 있다. 연기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어떤 형태의 향내 같은 냄새는 있다. 목관 속에 누여 있는 삶의 마지막 형체들이 운구 자동차에 실려 불에 살릴 차례를 기다린다.

한 쪽에선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찬송가가 울려 퍼진다. 또 한쪽에선 스님들의 목탁소리가 염불소리와 울음소리에 섞여 처연하게 하늘을 친다. 검은 장정에 검은 넥타이를 한 영정사진을 들은 상주들. 여인네들의 눈가는 부어 있다. 어린 나이에 사고로 삶을 마감한 영정. 울다 지친 어머니.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음엔 일찍 세상 떠난 것이
한이 아니라 어미보다 먼저 삶을 마감한 것이 한스러움에야. 그 슬픔을 어찌 위로하랴. 화장 시간은 약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관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문이 잠긴다. 삶의 문이 잠긴다. 세상에 있던 그 형체를 모두 내려놓는 시간. 여인네들의 울음. 남정네들의 눈가에 스쳐있는 눈물들. 가는 이를 어찌 막으리. 살아남아 님 을 보내는 남아 있는 자들. 삶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불이 훨훨 탄다. 혼이 훨훨 탄다.

한 줌의 재가 되어 나온다. 모아진다. 상주들에게 다 타버려 재가 된 가신님의 형체를 확인시킨다. 뼈 속에 들어 있던 철붙이들이 재와 함께 나와 제거된다. 재가 된 뼈골을 바순다. 하얀 가루가 된다. 상자에 안치된다. 보자기에 고이 싸여진다. 여인네들의 울음이 계속된다. 저렇게 한 줌 재로 변하는 삶인 걸. 하늘나라에 가신 님, 기쁨으로 보내드리자는 기도의 소리 들린다. 재를 뿌린다. 혼을 뿌린다. 가신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영정만 남는다. 고통이 없는 저 나라로 가신님을 뒤로한다.

남은 자들. 살아있는 자들. 삶을 계속해야 하는 자들. 들숨과 날숨의 호흡들이 계속 살아 있는 자들이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 속에 들어가 신성한 노동을 통해 삶을 기름지게 하여야 한다. 봄기운과 더불어 하늘이 밝게 맑아진다. 하늘을 가르며 서울에서 뉴욕으로 돌아온다. 낮과 밤이 바뀌어 있는 서울과 뉴욕. 하루 낮이 먼저 세상을 질러가는 서울에서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온 뉴욕은 서울과 똑같은 요일이 된다. 하늘은 그 하늘. 서울 뉴욕이 맛 닿아 있는 그 하늘이다. 세상과 삶을 마감한 영혼. 지금쯤 편히 쉬고 계시겠지.

어머니를 떠나보낸 막내 딸. 할머니를 떠나보낸 손녀딸들. 조그맣게 봉투에 담아 뉴욕으로 가져온 유골 재를 보며 흐느껴 속삭인다. “할머니 이제 우리와 함께 같이 살아요.” 계속되는 태어남과 삶과 죽음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반복되고 세상은 세상대로 돌아간다. 살아 있다는 우리들. 언제가 는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 인생이란 이렇듯 돌고 도는 것인가. 한 생명이 태어나는가 하면 한 생명은 가고, 또 오고 또 가고. 와서 기쁨을 주고, 가서 슬픔을 주는 인생들. 가신님은 가시더라도 남은 자들은 열심히 또 살아야 하겠지. 삶이란 이런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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