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심리로 풀어본 두 얼굴의 사나이

2008-03-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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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임상심리치료사)

최근 엘리옷 스피처 전 뉴욕주지사가 연방검찰이 적발한 국제 매춘조직의 성매매 서비스를 받은 사실로 사임하면서 뉴욕을 비롯한 미국사회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다.스피처 전 주지사는 프린스턴대학교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주 검찰총장을 거쳐 지난 2007년 1월 뉴욕주 지사에 취임했었다. 검찰총장 재직시에는 미국 금융계 거물들의 비리를 척결하고 거대 제약회사의 폭리에 맞섰으며 매춘조직 소탕에도 앞장서는 등 열정과 도덕성으로 큰 칭송을 받았었다.

이 한 편의 드라마같은 섹스 스캔들이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유는 매춘조직을 척결하는데 앞장서던 당사자가 그동안 고급 매춘 서비스의 고객이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동일한 한 사람이 서로 극단적으로 상충되는 두 가지 행위의 당사자였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이 심리기제의 작용에 의한 산물이라는 맥락에서 이 사건을 풀어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인간의 심리기제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는 심리병리적 관점에서 두 얼굴의 이중적 행태를 이해할 수 있다.


첫번째 실마리는 프로이드가 제창하고 그의 딸인 안나프로이드가 발전시킨 방어기제에서 찾을 수 있다. 방어기제라는 것은 인간의 자아(ego)가 위협을 받게되면 무의식적으로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를 통해 자아는 어려운 갈등 상황을 모면할 수 있지만, 실질적 문제의 해결 없이 방어기제에 의존하다 보면 2차적 신경증 등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스피처 전 뉴욕주지사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방어기제 유형 중 반동형성이라는 방법에 의존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동형성이라는 것은 자신의 부정적 무의식 속에서 용납할 수 없는 억압된 욕구나 충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와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즉, 싫어하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을 일삼는 사기꾼이 자선사업에 큰 돈을 기부하는 것들이 그 예들이다.따라서, 이 반동형성의의 관점에서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던 성적 욕망과 충동에서 발생되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매춘조직 소탕에 열성을 보인다거나 부와 명예에 대한 추악한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서 월가의 비리를 척결하는데 앞장섰던 행위를 이해해 볼 수 있다.

두번째 실마리는, 심리병적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평소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과 꼼꼼한 일 처리를 자랑하던 완벽주의자, 열정에 넘친 과도성취주의자, 극도의 도덕적 청렴주의자의 모습을 보였던 스피처 전 뉴욕주지사의 경우 평소 심리정신적인 문제로 심한 고통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과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서 과대망상적이고 과시적인 충동에 사로잡히는 자기애적 장애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탄탄대로만 걷던 스피처였지만 남모르게 이 자기애적 장애로 심한 신경증에 시달렸을 수 있다.

늘 좋은 성적, 좋은 학교,도덕적으로도 청렴하고 남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모든 일에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이면에는 아이러니칼하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가치함과 심한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그는 촉망받는 정치적 스타로 부상했지만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정책들이 번번히 실패되고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주의회와 검찰총장 재직시 만들어놓은 정적들의 공격은 연약한 자아를 가진 스피처 전 주지사에게 엄청난 불안감과 고통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성 중독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고급 매춘조직을 통한 성매매에 연루되어 아이러니칼하게도 자신이 그렇게 앞장서서 척결해 왔던 매춘조직에 걸려들어 한 순간에 몰락해버린 스피처 뉴욕 전 주지사의 섹스스캔들이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점은 한 인간의 이중성은 인간의 심리병리학적 특성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과 우리 자신에게도 두 얼굴의 이중성이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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