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르네상스 맞은 ‘영성’의 시대

2008-03-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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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희(SEKA 사무국장)

고려 말 유학자 정몽주는 유명한 단심가(丹心歌)에서 사람 3분설을 개진했다. “이 몸이 죽어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 짧은 시에 사람의 구성요소가 다 나온다. 한국인은 일찍부터 사람이 ‘몸’과 ‘마음’과 ‘넋’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은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세계는 영성 부활의 시기를 맞았다. 사회과학이 퇴조하고 종교서적 출판이 급증했다. 선교활동이 늘고 근본주의로 분류된 교회일수록 교인이 불어났다. 급기야 종교 담론을 즐기는 후보들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어째서 다시 종교일까? 왜 지금은 영성일까? 정몽주의 단심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고 있던 ‘넋’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20세기 전반은 자연과학의 시대였다. 자연을 정복해 풍요와 편의를 이루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50년대 전후 인류는 두 가지 폭발을 맞았다. 원자탄 폭발과 인구 폭발이다. 그러자 이번엔 사회 과학이 나섰다. 풍요와 편의보다 평등과 자유가 문제라고 했다. 여성, 인권, 환경 운동이 일어났고 근대화와 민주화도 진작됐다. 덕분에 자연 파괴와 인권 침해와 각종 차별이 크게 줄었다.그런데도 개인의 삶은 공허했다.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차별이 적은 시대를 살면서도 마음의 병은 오히려 늘었다.

미국 정신병 재단(APF)은 약 1,900만명의 미국인이 정신병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우울증 환자가 전체의 12%라는 연구도 나왔다. 2005년 현재 졸로프트( Zoloft)를 비롯한 5종의 인기 신경안정제 판매고는 100억 달러에 달했다.왜 그럴까? 몸과 마음만 가지고는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풍요와 질서를 가져다 준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와 영성으로 돌린 것이다.

지난달 발표된 퀸즈칼리지 민병갑 교수의 조사결과를 보면 뉴욕 일원 한인 종교인 비율이 무려 80%다. 이를 두고 한인사회의 종교 범람을 개탄하는 이들도 있지만 문제는 종교 공동체의 질이지 수가 아니다. 영성 진작에 도움이 된다면 다양한 영성 공동체가 많아지는게 좋다.그런 점에서 우려되는 것은 젊은층의 종교생활이다. 같은 조사에서는 1.5세와 2세 한인들이 10대에는 절반 이상이 교회에 나가지만 대학에 가면 3분의 1만 교회에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때의 종교활동이 영성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바람직한 종교생활은 깨끗한 영성이 바탕이어야 한다. 건강한 몸과 편안한 마음과 깨끗한 넋이 합쳐져야 진정한 행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영성시대를 맞아 넋에 대한 관심과 영성 개발을 위한 정진이 늘어나면 좋겠다. 특히 우리 미래를 담당할 청소년들이 영성과 종교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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