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원설 박사를 추모하며

2008-01-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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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센트럴 커네티컷주립대 경제학 교수)

크리스마스 이틀 전, 친구가 전화로 필자가 존경하는 이원설 박사의 소천(11월 29일)을 알려주었을 때 믿어지지가 않았다. 2006년 10월 서울의 대학문화관에 있는 기독교 리더십연구원에서 뵙고 미국에 왔지만 그것이 최후의 만남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일찌기 최연소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최초의 주미 장학관, 경희대 부총장, 한남대 총장을 비롯하여 한국기독교연맹 이사장, 세계대학총장회 동북아위원회 위원장, 아시아/태평양 기독교학교연맹 명예회장을 비롯 1992년에는 기독교 리더십 연구원을 창립, 2001년 7월에는 미주리주 웬스빌(Westzville)에 있는 미드웨스트대학/신학교에서도 필자도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국제교수협회(International Professors Council)등의 창립 등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였다. 여기에서 결의된 것은 각자가 ‘지식의 십일조’(Tithe)까지 바치기로 하였는데 여생을 두고 몸소 실천하셨다.

일찌기 오하이오 노선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1957), 웨스턴 리저브대학에서 석사학위(1958),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1961)를 받았고 교육과 저서, 기독교 지도자와 세계 각국에 산재해 있는 한민족을 가르쳐 ‘팍스 코리아나’를 목표로 헌신하였었다.더구나 1983년에는 객원교수로 필자가 가르치고 있는 대학에 와서 1년간 같이 지낸 것이 더욱 유대관계를 맺게된 둘도 없는 영광이었다. 학문, 신앙 및 개인적으로 지도편달은 물론 헤아릴 수 없는 조언과 격려 등을 받은 행운이었다. 자녀도 우리 대학에 유학오게 하였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손자가 하바드 대학에 유학생으로 공부하였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


하루가 30시간이 있어도 분주한 일과에서 글 쓰는 일에는 당할 사람이 드물다. 한글서적 18권, 영문서적은 21권에 달한다. 출판된 책은 거의 모두 손수 서명하여서 필자에게 보내준 특별한 배려가 잊혀지지 않는다. 영문으로는 제 12권째가 되는 ‘Write the Vision, It Will Surely Come’는 필자가 동양문화를 강의했을 때 교재로 사용할 만큼 양서였다. 젊은 세대에 권하는 것은 “자기의 비전을 세우고 이것을 성취하는 인격자가 되라”는 교훈이었다. 즐겨 인용한 성구가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잠언29:18)였었다.

온갖 역경, 고초, 그리고 몇차례 죽음까지 각오해야 되는 고비를 겪었지만 끝내 인내와 소망과 믿음으로 승리를 만끽하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물질문명에 젖은 고국의 실정을 시정하는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역설하였다. 가난과 싸우면서 지낸 유년시대 신앙을 지키신 아버님이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강요한 신사참배를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우등생인데도 중학교에 입학원서를 제출하지 못하게 한 일본선생, 아버지의 징용에 대신 가서 고역을 겪은 효자, 농사, 막노동, 형무소 간수, 사환 등 지겨운 일도 경험했었다.

자유를 갈망하여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온 사실은 생명의 위험을 각오한 모험이며 한번이면 족하다. 이 때 나이가 16세, 하지만 이북에 남아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오기 위해서 또다시 38선을 내왕했고 마침내 이산가족이 상봉할 수 있었던 용단과 실천은 감히 모방, 아니 상상하기도 힘드는 일이다.위험한 모험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연세대에 합격했지만 6.25로 물거품이었다. 전남으로 피난갔는데 인민군 점령 하의 보안원에 잡혀 밧줄에 묶여 벼랑에서 처형당하기 직전에 회개도 하였다. 뒤에 따라오는 보안관이 발로 찼을 때 다행히 손을 풀 수가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총소리가 난 것과 몸을 풀었던 밧줄이 흘러내려 곤두박질하며 넘어지는 것이 동시에 일치가 되어 가슴을 겨눈 총알이 뒷머리를 약간 스쳐가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났다.이것은 이박사가 겪은 고난의 일부분이다. “고생한 사람이 남을 사랑할 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 삶을 즐긴다”라는 격언이 있다. 이박사를 존경하는 이유도 내포된 교훈이다. 그리고 2006년에 펴낸 필자의 졸저(拙箸) ‘인생은 비빔밥, 맛있게 드세요”에 추천사까지 써준 특별배려가 이제는 유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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