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압구정과 기러기

2008-01-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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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옥(의사)

이조 초기 공신 한명회는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온 뒤 많은 문물을 배우고 학문을 넓히고자 허허벌판 한강 남쪽 강남에 큰 정자를 짓는다. 갈매기 떼들을 막아보자고 압구정이라 이름했다. 500년 후 전국의 갈매기들이 다 모여드는 학문의 메카가 될 줄을 상상이나 해 봤을까.밴더빌트는 가난했지만 큰 부호가 되고 철도사업으로 대륙을 석권한 후 대서양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는 뉴포트(Newport)에 큰 별장을 짓는다. 그리고 별장을 Breakers라고 명명한다. 바위라도 부숴보겠다는 라커펠러(Rockfeller)의 이름과도 비슷하다.

대서양의 거센 파도에 맞서 보겠다는 그의 강한 도전정신을 드러낸다. 또 한편으로는 과거의 모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부자가 된 후 이웃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내가 깨져보겠다는, 몸과 마음을 다 부수어서 헌신해 보겠다는 강한 의지도 담겨있다.철도왕 밴더빌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걸작품인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Grand Central Station) 입구에는 작은 거인의 동상이 서 있다. 그의 증손 알프레드는 1915년 그가 타고 있던 선박 Lucitania호가 독일 잠수함에 의해 침몰되자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구명대 2개를 여자와 어린아이에게 던져주고 그는 물에 빠져 죽는다.
산란기가 되면 연어들은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와서 상류에 도달한 후 알을 낳고 죽는다. 학문은 강물의 흐름에 이리저리 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역류하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변화와 창조를 이룩해 내는 것이다.


구만리 창공을 날으는 기러기처럼 진우는 중학교 때 혼자 미국에 와서 대학을 마치고 일류 법대에 진학했다. 미국의 대학과정 ‘undergraduate’은 힘든 과정이다. 시험 때만 당일치기로는 도저히 졸업할 수 없다. 4년 동안 도서관에서 밤새도록 꾸준한 노력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이제 진우는 3년 동안 군복무를 마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다. 어린 기러기에서 벌써 늠름한 한국의 사나이로 변신했다. 너무 훌륭하다. 그동안 뒷바라지 해 준 엄마의 눈시울은 벌써 뜨거워져 있다.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강인한 기러기 엄마의 의지도 보인다.

고왔던 그 얼굴의 눈 가장자리에는 벌써 할머니처럼 보이는 잔주름이 많이 늘었다. 자식을 멀리 보낸 뒤 얼마나 많은 인고의 밤을 지새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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