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로움과 애완동물

2008-01-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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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구(의사)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에 사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이곳에서는 소아과 의사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수의사는 찾기가 아주 쉬워서 다행이다”라고 했다. 물론 이 말 속에는 어린애를 낳아 기르는 젊은 세대는 적고 퇴직한 늙은 부부들이 많다는 뜻도 있겠다.또 하나는 이 퇴직한 부부들이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많이 키운다. 그래서 애완동물이
아들, 딸, 친구가 되어 외로운 사람들에게 아주 필요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이 친구들이 병이라도 나면 즉시 ‘수의사’를 찾아가야 하니까!

그러면 애완동물이 왜 필요할까? 대뇌를 가진 고등동물은 누구나 불안과 그리움이 있다. 왜냐하면 유아들은 어머니로부터 탯줄을 끊을 때 벌써 독립된 개체가 되어야 하는 운명이 씌워진다. 그러나 유아시절에는 어머니 없이는 먹지도(젖), 대소변 처리도 혼자 못한다. 그리고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보호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도움과 보호를 받아 유아기를 보내면서 배가 고프거나 똥, 오줌을 싸서 불편하면 울음보를 터뜨려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만일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우리 속담에 동생이 태어나 큰아이에게 어머니의 보살핌이 뜸해지면 불안해지고 어머니의 사랑을 도로 빼앗아 오려고 칭얼칭얼댄다. 이른바 ‘아시 탄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이라 한다.


유년기에 오면 이제 혼자 살아야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나이가 많을수록 혼자임이 더욱 확실해지고 무의식적, 의식적으로 어머니나 누구에게 의지하고 싶어진다. 이 감정이 그리움이라 해도 좋겠다. 이 그리움이 만족이 안되면 외로움이 덮친다.외로움 속에서 산다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공상을 한다. 혹은 밖으로 나가 자
기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한다. 어울려 잘 놀면 자기 정체성이 생겨서 친구들에게서 인증을 받고 자기도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하면 건강하게 자라지만 친구들하고 잘 어울릴 줄 모르면 또다시 혼자 있게 되고 외로움 속에서 살게 된다. 이런 와중에 누가 강아지 한마리나 고양이 새끼를 주면 정을 주고 받으면서 그런대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즉 사람하고 같이 못 살면 개나 고양이 하고라도 같이 살아야 정신이 그나마 건강하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삶(生)이란 것은 케어(care)하는 것이다.

내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개나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나 배고픈 홈리스에게 밥을 주면 그것도 케어하는 것이다. 이 케어를 정서적으로 보면 정을 주고 받는 것이다. 서로 관계를 맺고 교통을 하는 것이다.사람이란 아이에게나 어른, 노인에게나 간에 공기와 같은 것이어서 이것 없이는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살지 못한다. 우리가 음식을 먹지 못하면 배가 고프고 허기지고 고통스럽듯이 그리고 결국에는 죽고 말듯이… 사랑이 없어도 죽고 만다. 꼭 애완동물이 아니라도 애완식물, 애완 로봇... 등 그리고 혼자 사진찍기나 윈도우 샤핑, 여행, 등산, 낚시 등을 하면서 자기와의 교통을 할 수 있으면 그런대로 외로움을 달랠 수 있겠다. 어떤 분은 부인을 잃고 외로워서 종교에 귀의한 분도 있다.

귀의가 되면 그리움을 포기할 수 있으면 좋지만 대개는 하나님 사랑이 대리만족이 된다는 뜻이 더 일반적이라 할 수 있겠다.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이 현상을 “불안과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라 한다.
그러나 외로움을 못이겨 반사회적으로 나가는 수가 많다. 병(우울증…)이 난다거나 여자아이들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섹시하게 모양을 내고 남자를 유혹하여 자기의 외로움을 엉뚱하게 만족하는 수도 많다. 반면에 사내아이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비슷한 또래의 외로운 아이들과 또래 집단을 만들어 마약이나 갱단 같은 나쁜 짓에 빠지는 것을 자주 신문에서 볼 수 있다.

끝으로 외로움을 자각하고 정을 주고 받는 애완동물이나 식물, 애완 로봇도 정서적 안정을 주는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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