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벗어버리자

2007-12-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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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뉴욕타임스의 타드 파덤 기자가 힐러리 클린턴의 변화를 한 가지씩 벗어버리는 모습으로 묘사한 재미있는 글이 있었다. 1982년 남편을 주 지사로 당선시키기 위하여 안경을 벗고 남편의 성을 따랐다. 강한 개성을 약간 버렸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1992년 남편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하여 머리띠를 벗고 과자를 굽기 시작하였다. 머리띠는 직업여성의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변호사 힐러리의 이미지를 벗고 따뜻한 주부상을 부각시킨 것이다.

새 출발을 위해서는 묵은 것들을 벗어버려야 한다. “성공적인 이민을 위해서는 한국에서의 명함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동포들 사이에서 격언처럼 사용되는 말이다. 새 땅에 몸과 마음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가졌던 지위, 체면, 직업 등은 일단 버려야 하는 것이다. ‘맨발로 뛰어라’라는 좋은 표현이 있지만 좀 더 나아가 ‘벌거벗고 뛰어라’가 성공적인 이민의 비결이다.성경도 벗는 이야가를 꽤 많이 한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이 거듭남이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는 것”이 구원이다. 루터는 ‘변기 위에서’란 신학 용어를 만들었다. 사람은 변기 위에서 모든 것을 벗고 가장 솔직해지는데 그것이 신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뼈에 사무친 미움도 타오르는 화도 말끔히 벗어놓고 새 해의 문을 열자. 정말 괴롭던 일, 답답하였던 사연, 심장을 꿰뚫었던 아픔도 깨끗이 씻어버리고 희망의 문을 노크하자. 새 수첩에 묵은 기록을 담는 어리석은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실천 못한 결심도, 시행되지 않은 계획도 오늘로서 잊어버리자. 다행하게도 신이 새로운 도화지를 내주었으니 얼룩진 도화지에 연연하지 말고 내일의 걸작을 구상하자. 새 출발이 불가능한 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용서와 이웃의 기대가 있기에 누구나 힘차게 새 출발 할 수 있다.

남 몰래 흘리던 눈물도, 혼자서 내뿜던 한숨도, 긴 설명이 필요한 억울한 일도 이제는 다 잊어
버리자. 어이없이 뱉은 거짓말도, 느닷없이 남을 중상하게 된 실수도 모두 세월의 물결에 흘려
보내자. 내일부터 더 착하게 살고 더 정직하게 살고 더 도와주며 살면 되지 않겠는가? 구약 고
사에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어떤 여인이 등장한다. 과거에 사로잡히면 영원한 화석이 되어 올 스톱이 된다는 경고가 담겨있다. 보리스 파스퇴르나크는 ‘닥터 지바고’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크리스마스 때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로마는 끝장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수(數)의 지배가 끝나가고 있었다. 인간을 획일화하는 군대의 의무는 붕괴하고 있었다” 새 해의 문턱에서 그대에게도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할 것인가 존재할 것인가?’에서 현대인은 새로운 종교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한정의 생산, 절대의 자유, 무한한 행복 추구이다. 쉽게 말하면 ‘많이 만들어 많이 소유하고 마음껏 즐기자’는 것이 현대인의 삼위일체 신조, 즉 오늘날의 세계종교라는 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실감하는 것은 사람은 잘 버리는 예술을 터득해야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속옷까지 벗기고 알몸 처형을 받은 것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인류를 얻기 위하여 자기의 것은 다 버린 것이다.

과거라는 망령에 붙들려 있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새 나루를 건너가자. 그대가 모든 것을 잃어도 아직 미래라는 자본은 남아있다. 과학은 무지를 타파하고 평화는 전쟁을 이길 것이다. 꿈을 가지라. 기왕이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밝은 꿈을 품으라. 2차대전 때 매사추세츠 해안에서 S-4 잠수함이 침몰한 사건이 있었다. 구조대 잠수부들이 해저로 내려갔다. 그들은 잠수함 속에서 울려나오는 몰스 신호를 포착하였다. “아직 희망이 있느냐?”는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구조대가 역시 몰스 신호로 대답을 보냈다. “희망 있다. 조금만 참아라” 이 대답을 우울하게 새 해를 맞는 모든 한인들이 들었으면 한다.
뉴저지 주 크레스킬 시에 지난 추수감사절 새 경찰서장이 취임하였다. 시장이 이렇게 소개하였다. “스티븐 릴리스씨는 정확하게 관찰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25년 동안 이 마을에서만 경찰 생활을 하였습니다. 스티븐은 마을 아이들의 이름까지 다 기억하며 크레스킬
을 새로운 마을로 만들기 위한 희망과 의욕에 차 있습니다.” 정말 기대가 되는 경찰서장이다.

그대도 이 경찰서장처럼 희망과 의욕을 가지고 새 해를 향하여 전진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자신도 보람 있고 남들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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