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세대 아메리칸 드림

2007-12-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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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2007년도는 우리 주변에서 여러명의 한인 이민 2세 젊은이들이 캘리포니아로 떠나가는 집단 이동으로 파장의 물결을 몰고 온 해였다.
동부에서 이민 2세들은 지뢰밭을 뚫고 살아남아야 하는 부모들의 치열한 삶을 보면서 잔뼈가 굵었다. 그리고 그들은 부모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완성시킨 의과대학 교수, 변호사 등 전문직을 지닌 30대의 주류사회로 진입한 이민 2세들이다.

태평양을 건너 기러기 떼처럼 낯선 나라로 날아온 부모들처럼 또한 이민 2세들도 캘리포니아 드림을 꿈꾸며 철새처럼 날아갔다.
1840년대 미국 동부지역에서 신기루를 좇듯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골드러시(Gold Rush)로 끊임없이 서민들이 서쪽으로 밀려들었던 서부, 개척자들의 물결과는 상황이 다르지 않을까?금광을 찾아 일확천금을 꿈꾸는 한탕주의자도 많았으나 황무지나 다름없는 캘리포니아에 인구를 유입시키고 도시를 건설하게 했던 원동력은 바로 골드러시였다.또한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은 온 세계 최대 강국의 건국의 신화를 이루기까지 처절한 피비린내
나는 약육강식의 싸움터가 아니었던가?


미국-멕시코 전쟁(1846 ~1848)의 승리로 얻은 캘리포니아는 미합중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들은 자연을 극복하고 오늘의 천지개벽 할만한 오늘의 부강한 캘리포니아를 탄생시킨 원동력은 미국인들의 프론티어 정신이다.그 뿐인가? 서부 개척자들은 사냥을 하면서 끊없이 펼쳐진 대평원을 말을 타고 바람같이 달리면서 자유로운 야생의 삶을 누리며 살았던 자긍심이 강하고 순박한 인디언 원주민과도 싸웠다.유럽 정착인과 인디언 토착민은 승자와 패자를 결론지어야 하는 필연적인 싸움이었다. 언제나 땅의 주인은 정복자이다.

인디언 원주민들은 광활한 미대륙을 빼앗기고 1830년 황량한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사막으로 버려졌다.오늘 21세기는 개척지와 미개척지 사이의 변경지대가 완전히 사라졌다. 동시에 신대륙의 미지에 대한 아메리카 드림도 아득한 전설로 남았다. 그러나 아직도 캘리포니아는 지상낙원의 매혹
적인 땅인가?서부로 향하는 서부 개척자들의 행렬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역마차에 낡은 짐을 싣고 불타는 사막을 뚫고 끝없는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죽음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한인 이민 2세들은 동부에서 서부로 이주하는데 5시간의 비행시간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그들의 이삿짐은 동부에서
서부로 잇는 대동맥과 같은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로 실어다 주었다.

삶의 뿌리를 캘리포니아로 이식한 한인 이민 2세들은 빈곤층과 격리된 백인동네에 그림같은 집을 장만하고 아이들도 명문 사립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모 캘리포니아 의과대학 교수로 취임한 한 젊은이는 은퇴 후에도 현역 수입의 100%로 퇴직 연금을 받는 보증수표 같은 미래가 약속되어 있다. 동부 뉴욕은 장엄한 대서사시와 같은 풍요로운 땅이다. 뉴욕의 봄은 대지를 뚫고 새싹이 움튼다. 뉴욕의 여름은 작렬한 열정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처럼 쏟아지는 소낙비가 대지를 흠뻑 적신다. 그래서 싱그러운 푸른 산천 초목이 춤을 춘다.

단풍으로 물드는 뉴욕의 가을은 수채화처럼 환상적이다. 함박눈이 쌓이는 뉴욕의 겨울은 눈부시다. 그러나 그들은 역동적인 뉴욕땅을 등지고 메마른 사막지대인 캘리포니아로 떠나갔다. 이민 2세들은 동부에서 인생역전을 꿈꾸며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부모의 도전적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신세대의 아메리카 드림은 인생역전의 꿈이 아니고 안일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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