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콩나물 인생

2007-12-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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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홈아트 갤러리 대표)

미국에서 우리나라 콩나물을 아이디어로 가공식품 공장을 차려 크게 성공한 사람이 유일한(1895~1971) 선생이다. 당시 미국사람들은 콩나물이 어떤 식품인지 보지도 들어보지도 않았던 생소한 것을 알리기 위해 콩나물을 가득 실은 트럭으로 아침 출근길 유명 정치인이 지나가는
자동차를 기다렸다가 부딛치게 하여 도로가 콩나물로 마비가 된 장면을 매스컴으로 미국인들에게 콩나물을 알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법학, 상학을 전공한 후 귀국하여 제약회사 유한양행을 설립하였으며 초대 상공회의소 회장, 국민훈장(모란장,무궁화장), 동탑 산업훈장 등을 받은 기업인으로 사회로부터 벌어들인 돈은 사리사욕을 위해 쓰지 않고 다시 그 사회로 환원한다는 기업의 본정신을 일
깨워 준 훌륭한 분이다.나는 문득 대학원 졸업식장에서 대학원 원장이었던 ‘허위’박사가 한 말이 기억난다. 우리 대학원 졸업생들을 콩나물로 비교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모두가 똑같은 콩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열심히 지식의 물을 주어 이제 모두 자라 콩나물이 되었습니다. 키가 조금 큰 콩나물, 조금 짧은 콩나물, 그러나 이제부터 모두가 사회에 나가게 되므로 여러분은 콩이 아니라 콩나물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요”잠시 묵묵히 생각해 본다. 콩나물의 목적은 무엇인가? 크고 잘 생긴 콩나물은 돈 많은 재벌부인에 뽑혀 고급 식탁위에 놓일 것이라고 우쭐한다. 볼품 없는 짧은 콩나물은 손때 묻은 할머니 손에 뽑혀 춥고 배고픈 노동자들이 즐겨 찾는 새벽 해장국집으로 갈 것이다. 재벌 부부에 의해 뽑혀간 콩나물이라고 해서 모두가 고급 식탁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요리를 하기도 전에 추려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것도 있다. 차라리 때묻은 할머니 손에 뽑혀갈 것을 하고 후회할 수도 있다.
인정 많은 할머니는 몸통이 부러졌다고 쓰레기통에 버리지는 않는다. 머리는 머리대로, 뿌리는 뿌리 대로 추려서 해장국이 아니면 다른 밑반찬으로 이용한다.

미국으로 뽑혀온 콩나물은 어떤가. 미국사람들 식탁 위에 오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그들 입맛에 아직까지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인들의 식탁 위에 많이 오를 수 밖에 없다.멍청한 나는 세월이 수없이 흘러간 후 지금에 이르러서 겨우 콩나물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았
다.어떤 식탁 위에 올랐었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 먹었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재벌이 먹든, 노동자가 먹든, 성직자가 먹든, 죄수가 먹든 모두가 그들의 위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영양분이 되었다가 소장과 대장을 거쳐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왜, 이제야 깨달았는가.
고급 식탁 위에 올랐었다고 자랑할 게 없다.

새벽 해장국, 초라한 식탁 위에 올랐었다고 후회할 것도 없다. 성직자 몸에서 나온 분뇨는 향기가 나며 죄수의 몸에서 나온 분뇨는 구린 냄새가
더 나는가? 재벌들의 뱃속은 화려하며 거지들의 뱃속은 초라하던가?
모두가 평등한 사람들의 뱃속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미세하나마 그들의 영양분이 되는 것이 그 목적이다.흙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 임무가 다 끝나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콩잎을 피우기 위해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 아닌가.

한국땅에서 토종의 꽃잎을 피우든 미국땅에서 색다른 변종의 콩잎
을 피우든 2세들의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가 우리들 보다 더욱 더 품질 좋은 콩알이 맺어지고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모두 즐겨 먹을 수 있는 그런 콩나물이 생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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