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하늘나라 예금통장

2007-12-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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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12월은 성탄절이 들어있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며 그들과 함께 사랑과 온정을 나누며 지내는 달이다. 모두가 일년 내내 목표를 향해 주위를 돌아볼 새도 없이 분주하게 지내왔지만 세모에는 잠시 발을 멈추고 주변에 사랑을 베풀면서 지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일이 어찌 물질 만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인가.
찾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며 하루 종일 고독하게 지내는 너싱홈의 노인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관심을 보여주는 것도 온정이다. 또 병석에 누워있는 환자들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를 해주는 것도 일종의 온정이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요즈음 유행하는 말 중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다.


불어로 말하면 ‘귀족의 도덕성’으로 이를 의역하면 가진 자의 아량 정도를 말함이다. 스스로가 승리자라고 자부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음으로 양으로 동 시대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베풀어준 덕도 반드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진 물질이나 풍요로운 마음도 혼자만 가지고 즐길 것이 아니라 타인과도 나누고 더불어 즐겨야 한다. 그 것이 진정한 승자의 여유이고 함께 살아가는 길이다. 특히 병들거나 힘이 없고, 가난하거나 의지할 데 없는 노약자들을 보살펴주는 것은 어찌 보면 더불어 사는 우리들의 의무요,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은 1934년부터 12년간 뉴욕시장을 지낸 법조인 휘어렐로 헨리 라과디아씨(1882-1947)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다. 그 라과디아씨의 판사시절 일화는 아직도 뉴요커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빵 한 조각 도둑질한 잡범을 판결하기 전에 라과디아 판사가 그 죄인에게 범행동기를 물었더니 그 죄인은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라과디아 판사는 그에게 벌금 100달러를 물렸고, 그 100달러는 법정에 있던 방청객들에게 나누어서 내라고 판결했다. 그 이유는 더불어서 사는 사람들의 공동책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며칠 전 어린 유복자를 남기고 홀로 암과 싸우던 한인여성 최수지씨가 세상을 떠났다. 이 여인의 딱한 사연이 본보에 보도(10월 11일자 A3)된 후 한인사회에서는 그녀를 돕기 위한 치료비 5만 달러와 위로금이 무려 두 달 동안 답지됐다. 부동산 브로커인 코렌 곽씨가 5000달러를 기부하는 등 뜻있는 여러 명의 한인들이 땀 흘려 번 돈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최 여인은 마지막 순간에 크게 위로를 받았을 터이고 남겨진 어린 아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걱정을 덜었을 것이다.

그를 위해 그동안 모은 금액으로 남겨진 어린 아들을 돌보는데 한인봉사센터 같은 기관에서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한다. 한파를 녹이는 따뜻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고통과 슬픔 속에 쌓여있는 한인이 어디 그녀 뿐 이랴.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릴 때면 전통 있는 기독교 자선단체인 구세군의 자선남비가 거리에서 땡그렁 소리를 낸다. 직접 불우이웃을 찾기 가 어려우면 외면하지 말고 이런 기관에 작은 기부금이라도 대신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맡기는 마음의 여유라도 가져보면 어떨까?

12월이 오면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와 ‘스쿠르지 할아버지’ 이야기가 생각난다. 추운 날 도시의 한복판에서 얼어 죽은 고아소녀 발치에 밤새도록 지핀 성냥개비가 놓여 있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 어린 소녀는 성냥불에서 천국의 환상을 보며 숨져갔던 것이다. 또 스쿠르지 아저씨가 본, 자신이 쇠사슬을 끌고 가는 모습의 환상은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어른이 되고 인색해진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모르겠다.

이제까지 살면서 우리가 과연 ‘하늘나라에 있는 예금 통장’에 얼마나 모았는가 환산해 보자.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 쓴 돈이 바로 그 저축금이다. 그 금액만큼 저 세상에 가면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내가 베푼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하늘나라에 보고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가 기부한 한 푼 동전이 오히려 부자의 금덩어리보다 더 가치 있게 평가된다고 한다. 물론 부자는 더 많이 하면 될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하늘나라에도 분명 신용평가은행이 있어서 여러 가지 환율을 적용하는 것 같다. 아무리 주머니가 썰렁해도 하늘나라 은행에 사랑과 온정의 크레딧을 쌓을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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