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때 검사’

2007-12-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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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한민족포럼재단 사무국장)

찬물에 손발 담그기가 어려운 이맘 때면 산골 초등학교에서는 언제나 매주 월요일 손발의 ‘때 검사’를 하던 기억이 새롭다. 여름 내내 개울 물가에서 놀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차츰 날씨가 차가워지고 게다가 심한 겨울가뭄이라도 닥쳐오면 먹을 물조차 귀한 산골에서 손발까지 깨끗이 씻어낼 물이 부족하여 너도나도 손발에 때가 끼고 심지어 부르트기까지 한다.

우리는 그 당시 어린 초등학생의 몸으로도 부모님의 가을걷이를 돕기 위해 볏단을 나르고 벼이삭을 줍느라 날이 어두워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겨우 손 먼지만 턴 뒤 식사를 하고는 피곤에 지쳐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다 보면 자연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손과 발에 까맣게 때가 낄 수 밖에 없었다.그런데 담임선생님은 손발이 깨끗한 교사 자녀들이나 그 중 몇몇 깨끗한 아이들을 모델로 불러내 새까만 우리들의 손발과 비교하면서 면박을 주고 손바닥에 몇 대씩 매질을 한 다음 수업중에 우리를 개울가로 내모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치 갈가마귀 떼처럼 학교 근처 개울가로 몰려나가 군데군데 고여있는 물을 찾아 저마다 때를 밀기에 적당한 매끄러운 조약돌 하나씩 찾아들고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시린 고통을 참아내며 때를 밀어냈다.
찬물에 좀처럼 불려지지 않는 손등과 발등을 돌멩이로 빡빡 밀다 보면 어느새 터진 손-발등 사이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더 이상 아픔을 참지 못해 적당히 씻은 다음 검사를 받으러 가지만 여지없이 퇴짜를 맞곤 한다. 이렇게 면박과 꿀밤 얻어맞기를 몇 차례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서산에 저물고 그 날은 수업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귀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내 손발에 끼었던 새까만 때는 선생님의 ‘때 검사’로 개울의 차가운 물에 손발을 불려서라도 말끔히 씻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뒤 짧지 않은 40여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제는 손등과 발등 대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해 두 해 내 마음에 불결한 ‘양심
의 때’가 묻어나고 있었다.더구나 요즘 꼬박꼬박 주말예배를 보러 다니면서 목사님의 훌륭한 설교를 듣고, 또 매일 새벽에 일어나 조용한 마음으로 몇 구절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다 보면 더욱 더 내 마음에 부끄러
운 ‘양심의 때’가 까맣게 묻어있음을 느끼게 된다.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도회지로 나와 학교를 다니면서 손발의 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
만 차츰 세속에 물들어 가는 사이 나 자신도 모르게 한 겹 두 겹 양심의 때가 묻어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양심(良心)을 두고 신이 내린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 말한다. 인간사회에 이런 ‘신의 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 세상에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겉모습은 서로 다르다. 성공하여 비단옷을 걸친 사람, 실패로 인하여 집 없이 떠도는 초라한 사람들, 모두 한결같이 겉모습은 너무나 달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 즉 양심이 가책을 느끼고 양심이 고통을 앓고 있는 그 깊이는 서로 닮아 있다. 그래서 구 누구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경우 저마다의 마음에 묻어있는 ‘양심의 때’로 부터 자유스러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맘 때면 웬지 초등학교 시절 선생 검사가 이제는 ‘내 양심의 때’를 점검하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손발의 때 검사보다 이 ‘양심의 때 검사’에 더욱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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