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썰렁한 한국의 대선 분위기

2007-12-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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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한국의 대선 분위기가 매우 썰렁하다고 한다. 어느 후보 할 것 없이 유세장에 청중이 별로 없고, 선거용 선물공세가 없는 데다 일당 주고 홍보원을 동원하는 일도 없어 선거 분위기가 예전과 같지 않게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때문에 선거질서가 잡혀가는 것일까.

예전에 한국은 대선이나 총선 때가 되면 도시건, 시골이건 대목을 만난 것처럼 온통 술렁거렸다. 각각 대망의 꿈을 갖고 출마하는 후보들은 이때만은 평소의 꼿꼿했던 자세를 뒤로 하고 유권자들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갑자기 겸손한 사람으로 변신해 머리를 숙인다. 한 표가 갖는 ‘마술’이다.
선거유세 에서 후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 거의 절반이상이 입에 바른 소리다. 모든 선거에서 내건 공약들이 과연 몇 퍼센트 이행됐는지 통계를 내보면 좋은 정치학도에게는 논문이 될 정도다.


이번 선거도 다를 것어 보인다. 후보들 면면이 의혹과 불신 투성이다. 온 나라를 뒤흔들다시피 한 BBK사건에 연루됐을 지도 모른다는 의혹에 싸인 후보, 겁 없이 쏟아놓은 망발로 국민들을 식상하게 만든 후보, 귀족행세로 서민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후보, 그리고 급조된 후보들... 과연 어느 누가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지도자인가.

하나같이 드러나는 면면을 살펴보면 어느 누구도 국민의 경제를 위해, 아니면 국가의 장래를 위해, 혹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을 위해서 몸을 불사를 대통령이 될 것 같은 기대가 희미하다. 적어도 한 나라를 다스리려면 무엇보다 경륜이 있는 사람이 적격일 것이다. 지저분한 것이 아니라 깨끗한 경륜, 위험한 사상이나 정치철학을 갖지 않은 경륜, 희생할 줄 아는 경륜, 명예가 무엇인지 아는 경륜을 말함이다.

한국의 대선을 바라보며 뉴욕의 한인들은 ‘인물의 부재’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것은 바로 경륜을 가진 자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경륜이란 누구나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닦고 또 닦고 하면서 쌓아가는 것이다. 가정에서의 가장도 그렇지만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길이란 더 더욱 자신의 행적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사회를 발전적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라야 한다.

지난 날 바람잡이를 동원해 당선된 선량들이 나라의 살림을 챙기기 보다는 자신의 축재에 더 발걸음이 바빴다. 부의 축적을 위해서 대통령은 재벌과 가까이 하고, 국회의원은 중소기업이나 돈 좀 있는 장사꾼들을 찾아다니는 게 상례였다. 누구 누구 전직 대통령이나 이름 있는 정치가들이 과연 재직 시에 축적한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 ,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서민들은 의혹을 갖고 있다. 단지 ‘전직 모 인사’ 하면 당연히(?) 챙겨놓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란 정치를 하되 정치의 영향을 받는 서민의 처지를 이해해야 하고, 정치를 하되 내일이면 한 서민의 신분으로 돌아간다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민들이 바라는 ‘지도자의 상’일 것이다. 해방 후 지난 50여 년간 대한민국 국민들은 민주주의 학습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을 뽑은 지 이제 20년이 되었고, 그 전에도 독재정치를 통해서 그 폐단을 체험하고 직접선거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제 ‘민주주의의 가치’를 충분히 체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국민의 수준을 결코 얕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 경제에 대한 생각이나 후보를 보는 관점이 이제는 예전의 적당히 고무신이나 막걸리만 주면 넘어가는 그런 때가 아닌 것이다. 올바른 정책의 대결만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는 길이다. 이번 대선에는 자그마치 12명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일이 두주일 남은 지금도 누가 선출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선거란 역시 뚜껑을 열어보아야 한다. 다만 선거분위기가 너무 썰렁하다니 국민들이 어느 후보에도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그야말로 ‘정치부재’ ‘정치 무관심’의 현상은 아닌 가 염려된다.

‘정치’란 정말 중요한 것이다. 그 것은 바로 밥숟가락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번영, 그리고 한민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여 다만 역사에 자랑스러울 이름 석 자를 남기고자 하는 그런 진정한 지도자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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