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며

2007-12-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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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경(목사)

내가 살고 있는 노인주택의 정문 양편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나이 들어 늙어가는 노인주택 정문에 소나무가 서 있다는 것이 우연스러운 일인지 아니면 뜻이 있는 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늘 드나들 때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절 푸르기만 한 이 소나무를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늘 푸른 인생을 살자”고 상록인생의 정서를 생각하곤 하였다.
이번 가을에 나는 그 소나무 주변에 있는 나무와 그 낙엽들을 바라보며 상록인생의 정서가 흔들렸다.

나이 들어 머리가 희어가는 내가 어찌 저 소나무처럼 늘 푸르를 수가 있겠는가?! 그 보다는 저 낙엽들 중에 아름답고 깨끗하고 빨갛게 물든 잎새처럼 정열적으로 삶을 마치는 것이 오히려 그럴 듯하지 않은가.동네 길을 걷다 보면 여름에는 모든 잎새들이 수종에 관계 없이 푸르고 청청하기만 하더니 가을이 되니 어떤 것은 된장 색깔로, 어떤 것은 누루칙칙하고, 어떤 것은 거무틱틱하게, 어떤 것은 노랗고 맑게, 어떤 것은 빨갛게 물들어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그런데 유난히도 어떤 것은 마치 우리 인간의 심장을 헤치고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빨갛고 붉게 물들어 떨어져 발에 밟히우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땅에 떨어진 잎새일 지라도 그렇게 아름답고 곱게 물들어 떨어진 잎새를 차마 밟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팔을 내뻗어 그 잎새를 주워서 책과 수첩에 꽂아 놓는다. 일년 동안의 수명을 깡그리 내 주고 단풍잎으로 마친 정열적인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어서이다.

계절의 가을을 보내면서 인생의 가을도 생각하게 된다. 여름 동안에는 그토록 푸르 청청하기만 하던 잎새들이 계절의 휴면기가 되니 가지각색으로 물들어 변하듯이 인생도 여름에는 제각기 자기 잘난 멋에 따라 마음껏 푸르게 살다가 인생의 가을이 되니 각기 자기가 살아온 세월의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어떤 사람은 악하고 추하게, 어떤 사람은 부끄럽고 비천하게, 어떤 사람은 착하고 선하게 그 인생의 색깔을 드러낸다.

연수가 70이요, 80의 세월을 산, 한 사람의 머리가 순백하고 얼굴에 혈색이 돌고 팽팽하며 주름살도 없고 허리도 굽지 않고, 손길도 부드럽기만 하다. 곱게 늙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든 모습이 이렇게 곱다 할지라도 그것이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은 굶주리고 헐벗는데 자기는 혼자 호의호식하고 다른 사람은 손발 부르트도록 일하는데 그는 빈들빈들 놀며 무의도식 했다면 그 늙은 모습이 곱대서 어찌 아름다운 인생일 수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그와는 반면으로 머리가 희어진 한 분은 핏기 없는 얼굴에 주글주글한 주름살과 까칠까칠한 피부에 허리는 굽고 손도 부르터서 인생 말년의 몰골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주느라 얼굴이 주글주글해지고 허리도 굽고 손도 부르텄다면 그 인생은 아름다운 인생이다.
잠 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요,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했는데 머리가 희다하여 모두 영화의 면류관이 아니라 의로운 세월에서 희어진 머리라야 영화인 것이다. 테레사 수녀의 그 주글주글한 모습에서 그 뜻을 알 수 있다.

나무 잎새들이 단풍으로 물드는 내력은 기온의 차가운 변화에 따라 잎새들이 가진 엽록소를 빼앗기고 내어주어 푸르던 색깔이 청록과 노란색으로, 그리고 붉게 변한다는 것이다. 엽록소를 깡그리 알뜰하게 모두 내버린 잎새가 빨갛고 노랗게 단풍이 든다고 한다. 자기를 마음껏 내어주는 고통을 통하여 정열적인 아름다움이 얻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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