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탈리안 시어머님

2007-12-04 (화)
크게 작게
최윤희(뉴욕시 교육국 학부모 조정관)

지난 8월, 한국에 다녀온 후 한국에서 사온 멋있는 디자이너 핸드백과 선물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마침 주말이라 집에 놀러온 뉴스쿨에서 재즈 피아노 공부를 하는 여동생의 딸인 조카 의주와 시댁이 있는 롱아일랜드 소재 포트 워싱턴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며칠 전 생일이었던 손위 시누이에게 줄 아름다운 꽃도 사고 시어머니에게도 드릴 꽃을 하나 더 사가지고 가니 뒷좌석에 가득 놓인 꽃과 선물로 내 마음은 풍성했다.

한국 갔다 온 얘기며 여러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화제가 이상한 방향으로 돌변하며 나의 기분을 몹시 건드렸다. 특히 친정식구인 조카가 바로 옆에 있는데 아주 자존심이 상하는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그럴 때는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므로 “Mom, I have to go.”하고 얼른 시댁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운전은 하면서도 조카랑 얘기하는데 온통 생각은 아까 시어머니와의 대화 내용이 머리에 맴돌았다. 속도 상했고, 아니 조카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이렇게 계속 생각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원래 혼자 미국에 와 이곳에는 친정 식구란 한 사람도 안 살아서 항상 혼자 시댁에 가다가 이번에는 젊은 친정 조카를 데리고 가니 섭섭해서 그러셨나?…
아무리 생각해도 선물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갔다가 상처만 받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에게 말하니 위로는 커녕 “Why did you go? You didn’t have go go!” 한 마디로 들어보지도 않고 도리어 화를 낸다. 아니 기가 막혀서… 자기 부모에게 잘 하려고 시댁에 갔다 왔는데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더 화를 내니 맞붙어 싸우면 큰소리 날 것 같아 참고 냉전이 시작됐다.

며칠이 지난 후 차분한 대화를 통해 나의 억울한 기분을 남편이 이해하게 됐다.한달 전, 갑자기 시 외숙모가 돌아가시게 됐고 폭우 쏟아지던 날 초행길인 글렌코브 제일 끝에 위치한 장의사에 갔다. 그 자리에서 우리 가족을 번 시부모는 어색하지만 아주 반가워 하셨다. 얼마 전부터 남편은 여행할 기회도 별로 없는데 기분전환 겸 이번 댕스기빙은 캐나다로 여행갔다 오는 것이 어떠냐는 말에 처음엔 동의했고 막내딸 백희도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댕스기빙이 다가오자 나는 생각을 바꿨다. 가끔 나에게 속이 따끔하도록 상처를 주는 시어머니지만 결혼 초, 이탈리안 요리를 잘 못할 때 주일날 마다 교회 끝나고 가 옆에 서서 요리 배우며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으며 이탈리안 특유의 기질로 화를 금방 내시지만 뒤돌아서면 풀어지고 내가 모르는 것은 단어까지 항상 도와주셨다. 그리고 내가 늙었을 때 우리 자녀들이 집에 안 오고 가족끼리 여행가면 나는 아주 슬플 것 같고 우리 딸들도 내가 그렇게 하면 자기들도 댕스기빙 때 부모님에게 안 가고 여행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교육상 안 좋아 댕스기빙 데이에 시댁에 가서 즐겁고 기쁜 하루를 지내고 왔다.

센스가 빠른 시어머니는 너무 좋아서 그 다음날 “네 남편 주려고 터키 한마리 구워놨으니 가지러 오라”고 해 바쁜 일 다 제쳐놓고 가져와서 먹으니 남편이 아주 좋아했다.자녀들은 골백번 용서해도 부모, 특히 시댁과의 관계에서 예민해지기 쉽다. 그러나 자존심을 내려놓고 너그럽게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자녀들이 보고 배워 가정의 평화와 부모가 마음 편히 장수하도록 돕는 일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