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둑질 하지 말라

2007-12-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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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요즘 공동묘지의 동판 묘비를 훔쳐가는 신종 도둑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뉴욕주 카유가 레이크와 펜실베니아주 리하이 밸리의 두 공동묘지에서만 78개가 도난당한 것이 확인되었다. 동판 값은 개당 40달러이고 30파운드나 되는 무거운 것인데 정말 째째한 도둑들이다. 구리값이 파운드 당 1달러85센트 올랐기 때문이라는데 묘비를 도둑맞은 유가족들은 “묘비보다 이름을 도둑맞은 것이 분하다”고 분개하고 있다.

남의 것을 가져가면 안 된다는 것은 유치원 때부터 배운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인데 사람들은 늙게까지 잘 지키지 못한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훔치는 규모와 종류가 점점 더 커간다.훔치는 것은 돈이나 물건만이 아니다.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은 남의 시간을 도둑질하는 것이고, 부당한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사면 경영의 기술이 아니라 노동력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소위 ‘가짜’란 이름을 훔치는 것이다. 모세는 제 8계에 도둑질을 엄금하였고 제 10계에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고 하였다. 3천년 전에도 남의 아내나 남편을 도둑질하는 신사 숙녀들이 많았던 것 같다. 가장 큰 도둑질은 자기 자신의 양심을 훔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둑을 좀 배웠으면 한다. 바둑에 ‘정수’란 말이 있다. 정정당당하고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수이다. 정수가 아닌 수로 ‘속임수’도 있고 ‘꼼수’도 있다. 유치한 방법으로 상대를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수로서 약간만 강한 상대를 만나도 즉각 응징 당한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이란 말이 있는데 바르게 사는 사람은 큰 길로 다닌다는 뜻이다. 큰 길이란 떳떳한 길이며 그렇지 못한 길에 샛길, 뒷길, 곁길, 지름길 등이 있다. 이 모든 길이 결과가 좋지 않다. 사람이 편법으로 살거나 억지로 밀고 나가서는 안 된다. 정도를 따라 순리로 시냇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영국 브리젠드 마을에서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혼자 사는 95세의 토머스 부인 집에 한 청년이 찾아왔다. 외로운 할머니를 위로해 드리기 위하여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 드리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바리톤은 참으로 아름다워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세 곡이 끝난 뒤에 청년은 물 한 잔을 요구하였다. 노인이 부엌에 다녀오는 사이에 청년도 사라지고 현금 195파운드와 귀금속 장식품들이 사라졌다. 노인은 돈보다 크리스마스를 도둑 맞았다고 한탄하였다.금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도둑질 할 것인가? 성탄의 의미는 외면하고 성탄을 빙자한 행락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겠는가!

영어에 ‘Advent wilderness’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강림절 광야’가 된다. 성탄을 앞둔 약 4주간을 강림절(혹은 대강절)이라고 부른다. 이 계절이 광야가 된다는 말은 예수 탄생의 의미는 상실하고 이 아름다운 계절을 삭막한 허허벌판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특히 금년 연말에는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인류가 너무나 많다. 전쟁 때문에, 태풍과 가뭄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것이 크리스마스 절기를 가장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이다.

테니슨의 ‘In Memoriam’에 나오는 한 구절, “밤을 뚫는 아기의 울음소리/빛을 부르는 아기의 울음소리/말도 없었다/설명도 없었다/한 아기의 울음소리뿐/그러나 그 울음소리는/새 날을 밝혔느니”12월은 노는 계절이 아니라 주는 계절이 되어야 한다. 축제의 계절이 아니라 사랑의 계절이 되
어야 한다. 사랑이란 주는 것이다. 악보는 연주되어야 음악이 되고 종은 울려야 종이 되는 것처럼 사랑도 내주어야 사랑이 된다. 사랑은 말과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주머니 속의 내 돈이 없어져야 하고 바쁜 내 시간을 쪼개주어야 사랑이 된다.

뉴저지주 패터슨에 리보라는 소년이 있다. 손재주가 좋아서 남이 버린 헌 자전거를 모아다가 수리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 가난한 아이나 복지시설에 선물한다. 연간 20대나 선물한다고 하니 정말 훌륭한 소년이다. 미국의 한 구호단체가 11세 소년의 편지를 공개하였다. “나는 보통 아이보다 살이 찐 편입니다. 나를 거울로 볼 때마다 아프리카의 병들고 야윈 아이들에게 몹시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나의 저축을 턴 102달러를 보냅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이 아이의 양심을 우리도 가져야 한다. 나쁜 짓을 안 한 것만으로는 양심을 지킨 것이 못된다. 굶는 사람을 보고 외면하는 것도 역시 양심을 거슬리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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