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얼굴 짱 보다 표정 짱이 더 좋다

2007-11-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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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언론인)

콧등을 빨갛게 시리게 하는 겨울바람이 보도 위를 휩쓰는 늦은 오후 시간, 강남 일대 빌딩숲 사이로 젊은이들의 발랄한 맵시가 생기를 띤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미운 얼굴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람들의 인상은 생김새에 정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다. 꼼꼼히 뜯어보면 잘 생긴 얼굴인데 눈길을 마주치는 게 면구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면구조상으로는 별로인데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관상이 있다.

나는 관상을 알지 못하므로 이런 인상 살피기가 그 사람의 운세나 팔자소관과는 관계가 없을 터이다. 하지만 인간관계 형성에 인상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 취업시 면접을 위해 남자도 성형의 칼날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고 보면 한번쯤 짚고 넘어야 할 것 같다.‘얼짱 몸짱 신드롬’에 빠져있는 주변을 돌아보며 과연 이것이 인상 가꾸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지 머리가 갸우뚱해 진다.


일본의 문인 무로이사이세이는 학력도 없는데다 얼굴이 몹시 못생긴 사람이다. 그는 “용모는 문장같이 속임수를 쓸 수도 없고 매일같이 찾아오는 손님을 안 만날 수도 없으며, 수염을 깎을 땐 거울을 안 볼 수 없어 괴롭다”고 했다. 게다가 골을 내면 못난 얼굴이 더 못나 보이므로 되도록 골 내지 않기로 했다고 하니 배움직한 처세론이라 할 만하다.화를 내면 어찌 못난 얼굴만 더 못나 보이겠는가. 잘 생긴 미색일 지라도 우거지상을 하거나 벌레 씹은 표정을 짓는다면 유쾌한 인상을 주지 못할 건 뻔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루면 몇 차례 붉으락푸르락하며 살아간다. 일반 동물 가운데 희로애락을 모두 나타내는 동물은 없다.

개는 꼬리를 흔들어 반가움을 알리고, 야수는 이빨을 드러내 으르렁거림으로써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하는 정도다. 사람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존재다. 감정은 얼굴을 통해 나타나므로 ‘사람의 얼굴은 심성 그대로’라는 말이 있다. 심성이 바르면 얼굴이 평온하고 심성이 비뚤어져 있으면 표정이 흉하게 보일 수 밖에.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의 표정이 화석처럼 굳어있어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늘상 겪으며 사는 우리끼리는 모르고 지내는 일이지만 이것은 놓칠 수 없는 충고다.

즐거운 일이 있어도 촐랑대지 않고 조금 언짢아도 내색하지 않는 근엄하고 표현 없는 표정, 이것이 유교문화에 젖어 온 우리의 전통적 모습이었다.미소 짓는 외국인의 친절을 접할 때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서구인들 사이에 신랑감을 고르는 조건의 하나가 ‘유머감각’이 있는 남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재치있는 말을 일상화하며 살아간다.

재치있는 말에는 포근한 햇살과 같은 해맑은 웃음이 따르게 마련이다. 웃는 얼굴에 어찌 침을 뱉겠는가. 대화는 자연스레 풀리고 아집은 누그러들게 마련이다.표정이 굳으면 감정까지 굳어지는 법, 사람의 생태학적 구조는 찌푸리면 의식의 경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있다. 열린 마음, 포근한 감정, 여유있는 표정은 사기를 올리고 창의력을 키우며 조직체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진지하고 성실함이 엄숙하고 딱딱한 안면근육의 소산일 수는 없다.

‘인간의 죄는 교만에서 시작되었다’는 종교적 해석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만하고 거들먹거리는 미색 보다는 조금은 못 생겼어도 온화하고 웃음 띤 얼굴이 호감을 준다는 평범한 이치를 생활 속에서 살려야 한다.
강남 대로에서 만난 잘 생긴 얼굴들이 더욱 예뻐지기 위해 고운 마음을 담은 밝은 표정으로 피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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