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로가에 한가한 잡담(爐邊閑談)

2007-11-24 (토)
크게 작게
이홍재(전 은행원)

갑돌이와 갑순이는 이사달 산 밑자락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한나리란 마을에 태어나 소꿉친구로 자라면서 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같을거라고 찰떡궁합에 쇠심줄 인연으로 백년천년 살고지고 수없이 손가락 걸었지만 갑돌이 군에 입대한 뒤 갑순이 맘이 변해 “저 구름에 비 들었으라”했는데 소니가가 쏟아지니 갑돌이는 반 넋이 나간 상태다.

갑순이의 변인 즉, “건너 마을 중배가 사생결단으로 청혼을 하니 어쩌면 좋으냐”고 사흘도리로 닥달하는 편지를 보내니 자기 떡이라고 침 발라놓은 갑돌이도 딱하고 이 참에 노총각 신세 면하겠다고 남의 밥 보고 찌개 떠먹는 중배도 딱한건 마찬가지다.요즘 한국의 정치판을 보면 ‘빚보증 서주는 자식 낳지 말라’는 속담도 바꿔야 할 것 같다. 멀쩡한 사람도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숫채 인간이 변해버리니 하는 소리다.하긴 ‘정치인은 학식이 있거나 성품이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 무식한 깡패들에게나 알맞는 직업이 정치다”고 한 이 독설은 2000년 전에 희랍의 극작가인 아리스토 파네스가 한 말이다.


얼마나 정확한 예언인가. 모르긴 해도 한국에 대고 이런 소리 하면 칼 들고 덤벼들겠지만 절대 틀린 말이 아닌성 싶다. “배웠으면 뭘 하냐 이 무식한 깡패X들아”를 애둘러 한 말 같다.작금의 후보들이나 참모들 입에서 나오는 상대방에 대한 비방, 모략, 협잡 등은 불교에서 말하는 아귀도 인지 수라도인가를 연상케 만든다. 이 난 중에서도 더 욕먹는 사람이 이회창이다. 대쪽은 커녕 씹다 뱉어버린 부꾸미 취급이지만 이회창만 나무랄 수도 없다. 막가는 노름판에서 상하, 양반 상놈이 어디 있나, 밑천과 끝발이 왕이요, 막판에는 마누라까지 잡히고 삼팔광땡 노리는 것이 노름판의 생리다. 시쳇말로 올인해서 뛰었는데 이인제한테 당하고 김대업한테 또 당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표상의 얘기일 뿐 내용상으론 김대중에게 당한 것이다.

얼마나 원통하고 절통했으랴. 대장부 육친을 잃었을 때나 흘려야 될 눈물을 품위나 존엄이 파괴된 노름판에서 흘렸으니 그 아픔이 어땠을까. 그니를 동정하기 보다는 그에게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기회를 갖게 하는 것도 김대중의 전 예 때문에 크게 욕될 바가 없다.제 아무리 유능한 후보라도 유권자가 찍어주지 않으면 대통령은 커녕 개수통도 될 수 없다. 옛
말에 ‘양 갱수미 중국난조(羊 羹雖美 衆口難調)’란 말 “양고기 국이 아무리 맛있어도 모든 이의 입맛에 맞추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대중이와 무현이의 십년을 지겨워했던 이들은 창을 찍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모두 유권자의 몫, 자업자득인데 누가 누구를 탓하랴.

이 시점에서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광복 이후 무려 60여년간 수없이 많은 선거를 했으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농투성일 지언정 선거라면 적어도 눈치 3단은 되고도 남았을 것인데 어쩌자고 이 백석이 헛 똑똑이인지 쓰리고 아프다.번지수 다른 얘기로 바둑에서 초단은 옹졸하지만 잘 지킨다 해서 수졸 2단은 어리석지만 나름대로 잘 움직인다 해서 약우 3단은 싸우는 힘을 가졌데서 투력(鬪力)이라 한다니 하는 말이지만 언제까지 정치꾼들 사기 치는데 놀아날 것이냐는 얘기다.

솔직히 말해서 얼굴이 비치는 수제비 국물에 눈물 콧물 섞어 마시며 어린 시절 보낸 사람이 밤을 낮삼아 뼈골 쑤시도록 일해 번 돈으로 집 사고 땅 사고 이자놀이도 할 수 있는게 인간 갑돌이인데 있는 X 것 뺏어서 없는 X한테 나눠주는 평준화가 진보개혁이니 옳다는 얘긴가. 정치꾼들 중에 검은 돈에서 떳떳한 X 몇이나 되겠나 모르긴 해도 한강 백사장에서 들깨알 줍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만X이 다 떠들어도 칼자루 쥔 갑순이 하기에 달렸다.5년 전에도 이 난을 통해 같은 얘기를 쓴 것 같으니 사돈 남 말 하는 것 같아 면구스럽다. 어쨌든 갑순이 만세 만만세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