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길 위의 노란 띠

2007-11-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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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18년 전, 독일 베를린에서 동서를 나누던 장벽을 철거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중고등학교 재학 중인 자녀에게 배낭을 지워서 현장에 급파한 부모를 알고 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녀들에게 장벽이 허물어지는 상황을 목격하고 그 의미를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하였다.세상에는 여러 가지 높고 낮은 장벽들이 있다. 그것들은 높낮음의 차이 뿐만 아니라 생성의 의미와 그 과정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것은 눈에 보이고 어떤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수많은 장벽들이 가지고 있는 차이점에 관계 없이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의사 소통을 비롯하여 인간과 물질, 지식과 문화 등의 교류를 막고 있다. 장벽이 가져오는 이런 현상은 소통이 아닌 막힘을, 발전이 아닌 퇴보를 가져오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장벽 중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젠가엔 허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만성적으로 치닫고, 점차적으로 더 굳어가면서 세상의 골칫거리가 되어버리고 만다. 남북간에 가로 놓인 DMZ는 눈에 보여서 다행이고 보이지 않던 군사 분계선(MDL)은 남북 정상 회담시 길 위에 노란 띠를 그려서 눈에 똑똑히 보이게 만들었다. 북한 조선신보는 노대통령 내외가 노란 띠를 넘기 전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본 시민들이 그 이유에 대해 분분한 해석을 하였다고 보도를 하였다. 군사 분계선이 눈에 확실하게 보였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설 때 감회가 깊었을 것이 당연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은 이렇듯 뜻이 있다. 그래서 애인에게 사랑의 카드나 꽃다발을 보낸다. 부모나 고마운 분께 감사장을 보낸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사과장을 보낸다. 이런 일련의 일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이게 한다. 의사 소통을 위한 지혜이다.보이지 않는 장벽 중에는 한 가정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있다. 장벽이 있음을 뚜렷하게 인정하
면서도, 그런대로 일상생활에 밀려가다 보면 어느새 불편하면서도 몸에 익은 평상복처럼 되어 버린다. 그러다가 큰 충돌이 생기면 서로 마음에 충격을 받지만 그 때를 지나면 다시 잊게 된다. 그래서 이 지역 부모와 자녀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에 녹색 띠를 그려 본다.

부모
한국인
주로 한국어 사용
부모에게 순종
같은 민족끼리
유명한 학교
좋은 친구하고
정식 메뉴 즐기기
전통 따르기
클래식 음악
우리
고급 물품 선호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한턱 내기
예비금 마련
분위기 즐기기
다년간의 우정
세계 명소 탐방
편지 쓰기
신문 읽기
책 읽기
내 아이 갖기
수공예품 사랑
형식 존중
영양 화장품 찾기

자녀
한국계 미국인
주로 영어 사용
내 자신에게 충실
다른 민족과 더불어
전공하고 싶은 학과
누구하고나
영양식 찾기
새로움 찾기
경쾌한 현대 음악

실용적인 것 찾기
남녀의 구별 보다
좋아하고 편한대로
덧치 페이
카드 사용
실속 차리기
인터넷 친구
봉사단원으로 세계를
셀폰 사용
개인 신문 제작
인터넷 읽기
입양아 키우기
일회 용품 애용
새로운 방법 연구
성형수술 하기


이렇듯 부모와 자녀 사이의 장벽을 예거함은 그 존재를 보이게 만들려는 것이다. 보이게 만든다는 것은 허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이것은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차별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차이를 인정하려는 것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장벽을 알고 서로 이해하면서 다가가는 길이다.앞에 예거한 것들은 이 시대의 특색으로만 볼 수 없다. 언제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세대간의 차이이다. 더 뚜렷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세상의 변화가 고속으로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이해하고, 장단점을 절충하는 길은, 어느 한 가지를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가치를 서로 즐기는 건설적인 태도가 아닌가. 부모와 자녀 사이에 장벽이 있다지만 어쩌면 유리 장벽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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