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종 백과사전

2007-11-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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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태정(회사원)

한국에 살았을 때 나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어린 시절을 항상 집안에서 개와 함께 자랐던 나는, 이곳 미국에 와서도 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막내아이까지 대학에 진학한 후 이제는 정말 때가 왔다고 생각되어 먼저 ‘개 백과사전(The Encyclopedia of
Dog Breeds)’을 한권 사서 일년 이상을 몇 번 읽어본 후에도 마땅한 개를 정하지 못했다.

마땅한 종류가 없어서가 아니라 백과사전에 등재된 것만 거의 400종 가까운 중에는 한번 길러보고 싶은 종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낚시를 즐기는 나와 역시 물을 좋아하는 ‘라브라도(Labrado Retriever)’종과 운명적으로 만나 기르고 있다.

개 사육 백과사전에는 각 종(種)의 영리함, 주인에 대한 충성도, 용맹성,경계성, 털의 빠지는
정도, 근육 발달, 후각의 발달, 친화력 등등에 따라 구분해 두고, 또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
이 적당한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길러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백과사전의 설명이 거의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그 많은 개의 종류에 비하면 인구가 65억이나 되는 사람의 종류는 대략 30여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이 200여개 국가에 흩어져 섞여 살고 있다. 자연스럽게도 나는왜 사람도 ‘개 백과사전’ 같이 영리함, 신뢰성, 성격, 근육의 발달 등등으로 구분해 놓은 ‘인종 백과사전’은 찾
아볼 수 없는지 궁금증이 발동했다.

인종별로 분류해서 몽골리안족은 어떻고, 게르만족이나 앵글로색손족은 어떻다는 백과사전은 없지만 국민(Nationality)별로 분류해서 ‘어느 나라 국민은 어떻다더라’ 식의 구전(口傳)하는 ‘국민 백과사전’은 있는 셈이다. 다만 문자(文字)로 인쇄되어 있지 않았을 따름이다.

나의 귀에 다른 나라 국민들이 어떻다는 얘기가 들린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국인의 특성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번 British LPGA에서 세계 인구의 1퍼센트도 안되는 한국여자들이 상위의 12명 중 9명을 차지한 것을 보고서 한국인들이 골프에 천재적 소질이 있다고 할지? 한국인들은 너무 극성스럽다고 할지? 해외에까지 나가서 데모를 하는 것을 보고서는 열정적이라고 할지? 제 나라도 통일 못한 주제에… 라고 할지? 조기유학생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교육열은 세계 최고라고 할지? 병적이라고 할지? 이 모든 것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를 통해 보면 인종에 대한 자기의 소신이나 견해를 얘기했다가 정치가들이나 공위 공직자들이 여론에 휘말려 자기들이 평생 쌓아온 직위에서 물러나야 했던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최근에도 영국의 대학교수가 우간다 국민의 평균 지능지수가 69라는 것을 예로 들면서 “가난한 것은 그 나라 국민들의 지능지수가 낮기 때문”이라고 했다가 물의를 일으킨 것이나,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가 “서구에서 시행되는 정책을 그대로 저개발국에 적용하는 것은 실용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가 물의를 일으킨 것은 그들이 언급한 내용이 사실과 전연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화한 시대에 타인종이나 국민에 대한 언급은 금기(taboo)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
을 따름이다.

그러나 가끔은 완전한 편견도 있다. 일예로, 60년대까지 NBA 농구코트에는 선수들이 백인 일색이었다. 왜냐하면 농구는 순간적인 판단이 아주 빨라야 하는 경기인데 흑인들은 두뇌와 근육 사이의 신경 전달이 느려서 농구경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NBA 코트를 보면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편견이었던 것인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주인에게 충성만 하면 사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개와는 달리 인간은 가정이나 사회, 그리고 학교 교육에서 기본이 갖추어지고 그 위에다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자기 개발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인종이 아니라 개인의 차이가 너무나 현격하기 때문에 인종이나 국민을 도매값으로 묶어버리는 ‘인종 백과사전’을 펴낼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동포들이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억울한 사정을 얘기할 때도 많은 경우에는 들어보면 언어만 유창하게 했어도 당하지 않았을 경우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는 ‘인종차별’이 아니라 ‘인간 차별’이라고 해야 정확한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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