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사는 행복의 문

2007-11-19 (월)
크게 작게
최효섭(아동문학가, 목사)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부르크스씨는 미국의 대선을 앞두고 현재 미국인의 만족도를 권위있는 기관들의 조사를 인용하여 보고하였다. 직업에 만족하는 자가 84%, 가정적 수입에 만족을 표명한 자가 76%, 앞으로 5년 동안 현재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62%, 그리고 전반적으로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 65%로서 세계 수위라고 한다. 개인은 이처럼 만족한데 나라의 현황에 대해서는 25%만이 만족하다고 하였으며 이것은 세계적으로는 꼬리로부터 네 번째로 미국보다 더 처지는 나라는 이스라엘, 멕시코, 브라질 뿐이다. 미국인 60%는 아들 딸의 대에 가서는 행복도가 현재보다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개인의 만족도는 다분히 경제생활에 기인하고 있다. 확실히 미국인의 주택이 커지고 자동차를 더 여러 대 소유하고, 풍요를 느끼며 산다. 그러나 많이 가지는 것이 곧 행복은 아니다. 헬렌 켈러가 “내가 사흘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첫 날은 친절했던 사람들과 갓 난 아기의 얼굴들을, 둘째 날은 박물관 미술관에 가서 인류가 이룩한 발전의 발자취와 놀라운 창조를 음미하고, 마지막 날은 떠오르는 태양과 숲의 새소리, 바다의 웅장함과 파도 소리를 듣겠다”고 하였는데 이것들은 우리가 돈을 안 들여도 즉시 얻을 수 있는 것들이고 사실 날마다 보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불행감을 가진다면 그것은 나에게 무엇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의 심성이 타락했
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 살수록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해돋이의 기적, 아기의 탄생, 계절 따라 바뀌는 색깔의 조화, 아이들의 웃음소리, 과학자들의 놀라운 발명, 예술가들의 위대한 창작, 착한 사람들의 숨은 봉사, 자유를 향한 우람찬 함성, 불치병과 싸우는 의학자들, 흐뭇하고 감사한 일을 찾아보면 하늘의 별처럼 우주에 꽉 찼다. 정말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이다.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행복해진다.교만과 아집과 욕심의 좁은 상자에서 뛰쳐나오는 것이 급선무이다. 화의 분화구에서, 질투의 용광로에서, 경쟁의 수렁에서 헤어나와 아이같이 맑고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가족에게, 이웃에게, 조물주에게 감사하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면 행복이 찾아온다.

미국 개척민의 초대 지사가 된 윌리엄 브레드포드씨는 새 땅에 정착한지 3년만에 감사절 지킬 것을 이렇게 선포하였다. “높으신 하나님께서 금년에 넘치는 수확을 주셨다. 인디언의 도움으로 옥수수, 밀, 호박과 여러가지 채소를 가꾸었고 숲에서 사냥을 하며 바다에서 생선과 조개를 넉넉히 얻도록 축복해 주셨다. 그 무엇보다 우리들의 양심을 따라 자유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선포한다. 1623년 11월 29일, 목요일, 오전 아홉 시부터 열 두시까지 어른과 아이들은 전원이 모여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이 모든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라”이들 건국의 조상들은 풍요한 수확과 행복한 환경에서 감사한 것이 아니다. 의지할 오막살이를 짓는 것보다 7배나 되는 무덤을 팔 수 밖에 없었던 모질게 추운 겨울, 옥수수 다섯개 씩으로 연명하고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이다. 한국계 이민들도 그런 개척자들을 조상으로 두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버넷 기프슨의 명저 ‘행복한 하루’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행운의 손바닥에 얼마나 많이 쥐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그대의 행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대의 마음 속에 감사한 생각이 없으면 그대는 파멸의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다른 공부보다 먼저 감사의 예술을 터득하라. 그 때 비로소 행복을 찾을 것이다.”불평도 만족도 습관이 된다. 불평의 눈으로 보면 사방에 불평거리가 널려있다. 그러나 감사의 눈으로 보면 고마운 일과 고마운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 나는 서툴지만 이런 시를 적어보았다. “오천 번의 그 맑은 새벽/오천 개의 이슬에 반짝이는 꽃송이들/황금빛으로 물든 오천 번의 황혼/달빛에 춤추는 허드슨 강/답답함을 식혀준 맨하탄의 강바람/고향을 전해주는 억만의 별들/세월 속에 불을 붙이는 파크웨이 단풍/사랑과 우정과 따뜻한 눈동자들/역사를 맑게 하려는 그 눈물과 피들/끝에서 끝까지 아름다움이 줄을 지었다.”

올려보는 불만보다 내려보는 자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욕망의 우물을 파며 인생을 마치지 말고 사랑하며 또 사랑하며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주머니를 채우려고 애쓰기 보다 감사가 가득한 주머니를 준비하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닐까. 사람이 감사를 모를 때 그는 독사의 이빨을 가지게 된다. 남도 다치고 스스로도 무너뜨린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