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심리적 외상과 가정폭력

2007-11-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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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뉴욕가정상담소 상담원)

심리적 외상은 자연 재해에 의하여 경험하게 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생명과 신체적 안전을 위협하고 무력감과 공포를 맞닥뜨리는 충격을 주는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갖게 되는 장애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는데 주디스 허먼은 심리적 외상을 경험하는 증상을 크게 과각성, 침투, 그리고 억제로 나누고 있다.

과각성은 전에는 없었던 각성반응으로 과민하게 반응하고 지나치게 경계하고 놀라며 집중에 어려움을 보이는 증상이다. 침투는 외상을 재경험하는 증상으로 플래시 백이나 악몽을 경험하는 것이고, 억제는 회피증상으로 외상과 연관되는 생각, 느낌, 상황을 지속적으로 회피하며 친밀감 등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상태인데 심한 경우에는 의식을 변형하여 자신의 지각과 유리시켜 공포나 분노,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게도 한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흔히 갖는 증상에는 우울증, 공포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신체화 장애등이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다른 사람에 의해 심리적 외상을 경험함으로서 위협과 무력감,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경우이다.


실제로 가정폭력사건의 경우 폭력행위를 사용하는 것보다 피해자를 죽인다거나 해치겠다고 위협함으로서 심리적으로 지배하여 공포와 두려움을 갖게하여 자율성을 파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심리적 지배를 당하는 것은 만성적인 심리적 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마치 자기가 없는 것처럼 감각을 잃게 되기도 하고, 과각성이 증폭되게 된다. 이들은 해리나 사고의 축소 등으로 자신의 의식을 변형함으로써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공포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이러한 의식의 변형은 가정폭력 피해자들 뿐 아니라 학대받은 아동이나 폭력에 노출된 아동들에게서도 흔히 보여지는 반응이다.
가정폭력이 있는 불안한 환경 속에서 아이는 위험하고 무관심한 양육자와 애착을 형성하고 신뢰감과 안전감, 자기감을 발달시켜야 하기에 다양한 심리적 방어에 의존하게 되는데 상황이 심각한 경우에 아이들은 부정, 자의적인 사고의 억제, 해리 반응 등을 사용하게 된다. 이들은 폭력시건이 실제 일어나지 않았다고 기억에서 단절시키거나 축소하고 합리화를 함으로써 자신을 지켜내려 한다.

가정폭력을 경험하였거나 어린시절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은 과도한 스트레스나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여기에 반응하는 정도나 방식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두려움의 정서와는 다르게 과도하게 반응하고, 자신의 심리적, 신체적 증상에서도 과거 심리적 외상을 경험했을 때와 같은 정도의 정서를 재경험하게 된다.자신의 생명이 위협당하는 공포를 느끼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갖게 한 경험이 자신의 인지 체계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남아있다가 유사하게 비슷한 상황에서 돌출되어 재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외상은 인지 체계에서 통합될 때까지 증상의 형태로 남아있게 되므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심리적 외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안전의 확립, 외상 이야기를 의식수준에서 재구성해 보는 것, 그리고 고립되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

우리는 심리적 외상을 갖게 된 사건을 기억하지 않음으로써잊어버리고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은 사실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숨겨둔 외상 사건을 불러내어 기억하고 의식수준에서 재경험을 하게 되면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이러한 점에서 자신의 경험을 다시 보고 느낌을 표현하고 의식수준에서 재경험하여 심리적 외
상을 자신과 통합할 수 있도록 상담가와 협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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