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랜 우울증에서 비롯된 분노 장애

2007-11-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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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주(코너스톤 상담센터)

법원에서 분노 치료(anger management therapy)를 받으라는 명령을 받고 그녀는 상담소에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화가 가득했다. 내가 왜 분노 치료가 필요해! 난 지극히 정상이란 표정이었다. 그녀는 작고 말끔한 사십대의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심리치료를 받지 않으면 감옥으로 직행하거나 심리치료기간을 연장하게 되어 있었다.사실 그녀는 첫 인상과는 달리 아주 예의있고 차분하게 상담자를 대했고 그녀는 분노 치료를 받으러 매주 상담소를 찾는 것에 대한 성가신 기분을 털어놓고는 자신의 행동의 결과이니 끝가지 치료를 잘 받을거라고 오히려 상담사를 위로하는 듯 했다.그녀는 두달 전 한 샤핑센터에서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 여인이 자꾸 시비를 걸어오며 앞을 가리지 말아라, 자꾸 움직이지 말아라 하면서 계속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고 그녀는 원치않는 싸움에 말려들어 상대방 여자를 밀치고 그녀의 가방을 떨어뜨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일로 인해 경찰서에서 법원에까지 이르게 되어 결국 분노 치료 명령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당시 왜 그렇게 과민반응을 했는지 스스로도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최근들어 하찮은 것에 지나치게 짜증을 잘 내고 또한 작은 일에도 말다툼을 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와 상담을 하면 할수록 그녀의 분노가 짧은 기간에 형성되지 않았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만성적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항우울제도 복용한 적이 있었다. 시간을 두고 그녀의 아픈 과거를 조금씩 털어놓게 하였다. 사실 그녀의 우울증은 결혼초기에 사산으로 첫 아기를 잃은 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임신 당시 작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커다란 문제 없이 뱃속의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진단을 받고 있어서 사산의 아픔을 겪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느 날 아침 갑작스런 아랫배 통증으로 쓰러졌고 깨어나 보니 이미 뱃속 아기를 사산한 뒤였고, 담당의사로부터 더욱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녀는 더 이상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그 후 그녀는 매일 우울한 나날을 보냈고 그녀의 상심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남편과는 이혼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누구도 그녀의 아픔을 들어주지 않았고 이해하지 못했다고 울먹이며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가 잃어버린 아기 얘기를 하면 화를 내고 그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너무 유난떨지 말고 잊어버리라고 오히려 꾸중을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점점 가족들과 멀어지고 사회성도 떨어져 직업도 잃고 우울증을 앓게 된 것이다.

우울증 초기에는 길거리에 지나가는 어린아이들만 보면 눈물이 쏟아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어려워지고 그녀의 우울증은 분노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이해 못하는 전남편과 가족들에게 미움이 싹트게 되고 어린아이들의 우는 소리, 재잘거리는 소리가 그녀를 화나
게 하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고 모든 일에 불만불평이 늘어가기만 했다.우리는 여기서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유산과 사산의 말하지 않은 죽음에 대해 애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훨씬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유산과 사산은 환영 인사를 하기도 전에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아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특히 사산의 비극은 예측하지 못한 상실이다. 그 상실로 인해 많은 부부들이 부부관계와 가족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또한 이번 사례처럼 아이를 잃은 엄마들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게 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의 경우처럼 억압된 감정들은 분노로 전환되고 그 분노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억압된 분노는 결국 반드시 공격적인 형태, 관계의 붕괴, 또는 정신질환으로 분출되고 만다. 수많은 정신신체 질환들이 억압된 분노와 적개심으로 인한 것이다. 여기에는 고혈압, 동맥경화증, 심장병, 만성 허리통증, 위궤양, 신경성 두통, 소화불량과 같은 상태도 포함된다.그녀는 상담시간을 통해 그녀의 분노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꼭 필요했던 사산한 아이와의 작별 의례를 준비하고 작별식을 하면서 그동안에 마음에 쌓아놓은 응어리를 풀어놓았다. 그녀는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리고 여러 장의 편지를 쓰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사산한 아이와의 작별식을 한 후 상담자에게 말하기를 이제야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가슴에 뭉쳐있던 답답했던 증세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분노치료를 마친 몇달 후 한 통의 전화 메시지를 상담센터에 남겨놓았다. 그녀는 맑고 건강한 목소리로 자신있게 말했다. 지금 현재 간호 보조사를 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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