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밀란에서 본 한국사람들

2007-11-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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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선(하버그룹 수석부사장)

앞으로 일년 후에 다가올 유행을 탐색하는 유럽 여행을 일년에 두번씩 다녀오곤 했다. 정해진 일정은 독일, 영국, 암스텔담을 거쳐 이태리의 몇 곳을 보고나서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 밀란이다. 밀란에서는 세계의 첨단 유행을 창조한다는 유명 브랜드의 명품점들을 빼놓지 않고 들르게된다.

그런데 이곳같이 동양사람을 반기는 곳도 없다. 같이 간 미국인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한국사람인 내 옆에만 붙어서 안내하면서 새로 나온 물건들을 권한다. 그만큼 동양사람들이 매상을 많이 올리는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인들이 가격에 구애 없이 씀씀이가 크다는 말을 들었다.
이 유명 명품점에 갈 때마다 영락없이 한국 고객들과 마주친다. 대부분, 아마도 잘 나가는 사람들의 부인인 듯 싶다. 그 큰 샤핑백이 땅에 끌릴 정도로 물건들을 사는 모습, 왜 그런지 그 표정은 밝고 행복하기 보다는 긴장되어 있었다. 한국사람인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을 후회라도 하는 듯한 묘한 표정도 읽게 된다.


내가 먼저 못본 듯 얼굴을 돌려준다.
몇 시간의 샤핑(?)을 마치고 걸어서 가는 곳이 그 유명한 ‘밀란의 두오모’다. 이 ‘두오모’성당은 이태리에서 두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세계에서 제일 큰 것 같다. ‘두오모’의 웅장함과 섬세한 조각들은 과연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하다. 5세기에 건축을 시작했지만 갖은 수난과 곡절 끝에 기어코 컬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기 10여년 전에야 겨우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이 성당은 4만명이 한번에 같이 미사를 드릴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거작이다. 이 ‘두오모’앞 광장에는 항상 수백명의 장사꾼들로 붐빈다. “경찰이다” 누군가 소리치면 마치 땅 위에 깔려있던 비둘기 떼가 한번에 날라가듯 이 노점상들은 어느새 물건들을 휘감아 가지고 사방으로 사라지고 남는 것은 허가가 있는 몇몇 노점상들 뿐이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군밤 장사이다. 알고보니 젊은 한인청년이었다.

그 후론 이곳에 올 때마다 이 젊은이가 구워 파는 군밤을 한 봉지씩 사가지고 ‘두오모’ 앞 계단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군밤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서울의 명동입구에서 파는 군밤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았다.이 한인청년을 눈여겨 보자면 이 멋있는 장소에서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사는 모습에 어디인가 마음에 여유가 있어도 보이고 낭만도 있어 보이면서 웬지 든든하게 여겨졌다. 명품장에서 물건을 사재끼던 잘 나가는듯 했던 귀부인과 밤 구워 파는 이 젊은이가 무척 대조적으로 느끼게 된다.

문득 어느 개신교 목사님이 영국을 다녀왔다고 하면서 한 말이 떠오른다. 영국의 교회는 90%가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 술집이나 식당들이 들어와 영업하더라는 말이다. ‘밀란의 두오모’가 걱정된다. 만약 이곳도 그렇게 되면 이 청년은 계속 군밤장사를 할까? ‘두오모’가 문을 닫으면 당연히 관광객의 수는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마도 군밤은 안 팔릴 것이다. 하지만 명품을 찾는 한국의 귀부인들은 여전히 발을 끊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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