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북한이 ‘개방개혁’해야하는 이유

2007-11-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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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일본이 미국의 군함외교의 위협에 못이겨 개항을 한 때는 1854년이다. 페리제독이 7척의 함선을 이끌고 에도만(지금의 동경만)에 들어와 개항을 요구했을 때 당시 집권세력인 에도막부 내에서는 찬반 논쟁이 거세게 있었으나 결국 미국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해 불평등조약을 맺고 개항을 했다. 그리하여 쇄국정책을 취해왔던 일본은 이 개항 이후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등 서구제국에 속속 개방되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1875년 일본은 자신들이 당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운양호 사건을 일으켜 다음 해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을 개항시켰다. 일본과 조선의 개항은 22년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이 차이가 나중에 엄청난 국력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일본 개항 직후 조선도 개항의 기회가 있었으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라는 두 사건으로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시켰다. 대원군은 조선 후기의 걸출한 정치지도자였지만 쇄국정책으로 우리 민족사에 씻지 못할 과오를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은 개항 직후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았던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개혁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에도막부가 타도되고 명치유신을 통해 부국강병정책을 추진했다. 서양의 문화와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국가로 탈바꿈 했다. 그러나 개항조차 뒤늦었던 조선에서는 개혁도 지지부진했다. 갑신정변과 같은 일부 개혁적인 시도도 있었으나 수구적인 집권층에 의해 좌절됐다. 이처럼 일본은 개방과 개혁에 앞섰고 조선은 개방과 개혁에서 뒤떨어졌다. 그 결과 한일합방이라는 역사의 비극이 발생했던 것이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갈렸을 때 남북의 상황을 보면 남은 농업지대였고 북은 공업지대였다. 북한은 특히 6.25 후 자력갱생의 중공업정책을 펼쳐 1960년에 이르러 전 생산중 공업생산이 71%였고 기계설비의 자급률이 91%에 이르렀다. 완전한 공업국으로 발전한 것이다.그런데 남한은 6.25를 계기로 미국과 밀착관계가 형성되면서 자본주의 경제와 서양과학에 개방되었다. 특히 5.16 후 경제개발을 본격화 하면서 외국 자본을 들여와 공장을 건설하고 수출을 장려하여 공업국으로 발전했다.

반면에 사회주의 국가들만 상대했던 북한은 자본 조달이 부족했고 상품시장도 좁아 공업생산이 위축됐다. 이리하여 남북한의 경제력이 역전되었고 남한은 계속 발전 성장한데 반해 북한은 계속 퇴보 낙후하여 지금과 같은 격차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북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최악의 경제난으로 위기를 겪었다. 식량부족으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그 해결책으로 개방개혁 밖에는 다른 대책이 없다는 견해가 나왔다. 때마침 소련이
붕괴되고 그 후신인 러시아가 개방개혁을 했고 중국마저 개방개혁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북한은 개방개혁을 할 경우 정치체제가 붕괴할 지도 모른다는 또다른 위기의식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렘마에 빠져 허송세월을 해 왔다.

그러나 변화는 어쩔 수 없이 오고 있다. 경제난과 식량부족으로 계획경제와 배급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북한에서는 부업경제와 지역시장이 허용되어 평양 시내에만 하루 10만명 이상이 붐비는 시장이 30~40군데나 된다고 한다. 국영부문 보다 비국영 부문의 경제활동이 압도
적으로 활성화 되어 순수한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이미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최근 언론매체를 통해 핵심정책 목표가 “경제강국 건설”이라고 강조하면서 당 간부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은 또 베트남 서기장의 방북에 이어 총리가 베트남을 방문하는 등 베트남 경제혁신 배우기에 나선 것 같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국가들과 교류하여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도모하고 있다. 중국과는 또다른 모델로서 참고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나라이다.

북한이 베트남 모델을 따른다면 잘 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이미 북한에 정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더 경제적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중국일변도에 의지했다가는 중국의 자본시장과 상품시장으로 전락할 우려가 없지 않다. 그보다는 베트남 식으로 자본주의 세계와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단시일에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중국과 경쟁하는 편이 정치적, 경제적 자주성 유지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이 방법은 또 광대한 자본시장과 상품시장인 자본주의 세계로 직접 진출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북한은 어떤 위험이 따르더라도 개방개혁을 해야 한다. 개방개혁이 체제에 위기를 조성하는 것보다 개방개혁을 하지 않아 경제가 파탄함으로써 체제가 위기에 몰릴 위험이 더욱 크다.

일찌기 개방개혁한 일본이 천황제를 존속시키고 있는 반면 개방개혁이 늦었던 한국의 사회구조가 격변을 겪은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종전 선언, 평화협정, 북미수교 등이 순조롭게 성사되어 북한의 개방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남한과 북한에게 모두 좋은 좥윈윈 게임좦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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