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인하지 말라”

2007-11-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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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옥(의사)

영화 ‘에덴의 동쪽’에 나오는 주인공은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고심끝에 유대 랍비를 찾아온다. 랍비는 십계명에 있는 Thou Shalt not Kill 보다는 Thou Mayst not Kill이 더 올바른 해석이라고 안심시켜 준다. 즉 살인을 해도 안해도 된다는 양면성을 가진 may의 교훈을 준다.

지난 달 북한 화물선 대흥단호가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으나 미 해군 구축함 제임스 윌리엄스호의 도움으로 해적 2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하였다.북한 선장은 5명을 고무보트에 태워 바다로 내버리라고 했다. 굶주린 상어떼에 먹이를 주는 사형선고나 다름 없다.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으면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테러 해적행위는 응징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미 해군 함장은 이에 반대하여 해적들을 살려 보냈다고 한다. 혼자의 판단보다는 국제법이나 인도주의의 결정에 더 치중을 둔 것 같다.
하무라비 법전에는 살인자는 반드시 죽이게 되어 있다. 구약성서도 마찬가지다. Shall 만 있고 May는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 사람들이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려고 했을 때 “죄 없는 자는 먼저 치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예수는 말했다.판사 한 사람의 판결이 옳다고 주장하는 하무라비에 비해서 영국의 관습법은 배심원제를 적용함으로 그 당시의 정황 참작, 인간의 존엄성,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O.J.심슨도 살인죄로 몰렸으나 배심원들에 의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 마찬가지인 열악한 환경에서는 차라리 코란에서 약속한 사후의 축복을 받기 위해 폭탄을 허리에 둘러매고 자폭하는 테러리스트들도 많다. 하무라비 법전과 코란 외에는 타협을 모르는 극단주의론자들의 가르침이다.

공산주의도 이와 비슷한 부류일까.
한국에는 사형제도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던 하무라비 원본은 전쟁 와중에 벌써 누가 훔쳐가서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하무라비의 Shall은 지구상에서 아주 없어졌으면 좋겠다. 미 해군 함장이 사랑을 베푼 것처럼 해적테러행위도 이제는 사라질 때가 되었다. 나는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오늘밤도 날을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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